기업들 취업 때 받은 정보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고 '쉬쉬'

#1. A대기업 1년차 대리인 문모씨(30)는 얼마 전 깜짝 놀랄 만한 일을 경험했다. 4년전 자신이 인턴으로 입사하기 위해 제출했던 지원서류가 사무실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시 서류뭉치에는 합격 불합격 여부를 떠나 서류를 제출한 모든 이들의 지원서들이 남아있었다. 지원서에는 지원자들의 사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
#2. 또다른 B대기업에 다니는 3년차 대리 황모씨(34)는 최근 인사팀에 발령나면서 소문으로만 듣던 '블랙리스트'를 확인했다. 블랙리스트란 이전에 이 회사에 지원했다 불합격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일컫는다. 불합격자들이 신입 또는 경력으로 이 회사에 지원했을 때 이 명단에 오른 사람들은 무조건 탈락하게 돼 있다. 역시 당시 작성된 개인정보들과 자기소개서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고, 인사팀 내부 관계자는 누구나 이 데이터베이스에 접근이 가능하다.
취업준비를 할 때 기업에 제출한 자기소개서가 버젓이 보관돼 '블랙리스트' 같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수년전부터 취업준비생들은 자신을 불합격시킨 회사에 제출한 서류를 돌려달라는 요구를 해왔지만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관련규제가 없고 서류전형 자체가 대부분 전산화 되면서 기업들의 이 같은 행위에 제동을 걸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대기업의 경우 취업을 위해 수집된 정보가 다른 계열사에 넘겨져 나중에 계열사 고객정보로 둔갑되는 경우도 있다.
현행법상 정보의 수집·이용·제공은 각각 동의를 받아야하고 각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는 파기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기업에 제출된 개인정보는 이러한 규정을 지키지 않고 없이 쓰이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 대부분 자기소개서 작성시 "작성한 소개서는 돌려주지 않는다"는 통보만 듣는다. 상대적으로 '을'의 입장인 취업준비생들은 여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백개의 지원서를 내는 지원자는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취업때문에 제출한 정보가 해킹 등에 노출될 가능성 높아지는 셈이다.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 변호사는 이에 대해 "정보의 수집과 이용, 제공이 각각 따로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실제로 기업들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며 "개인이 따로 개인정보 파기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실제 파기됐는지 확인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기업들에 제출서류 파기 여부를 문의해봐도 대부분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일부 기업만 "자체매뉴얼에 따라 파기한다"고 했다. 정보관련법 전문가인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도 "기업이 정보의 수집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는 파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기업이 지키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며 "파기 여부를 확인할 강제 규정은 현재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정보관리를 강제하기보단 해외처럼 취업에 꼭 필요한 정보만 기업이 요구하도록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규정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 지난해 미국 게임업체 블리저드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박모씨는 "서류전형에서 나이를 적지도 않았고 사진도 제출하지 않았다"며 "해외의 경우 지나친 개인정보 요구는 불법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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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취업 컨설팅 관계자들도 "호주 등 해외의 경우에도 사진도 요구하지 않고 수상이나 경력 위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한다"며 "신규인력을 선발할 때 불필요한 정보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또다른 목적이 있다고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