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ze] <렛츠고 시간탐험대>에 권하는 조선시대의 흔한 노동들

[매거진 ize] <렛츠고 시간탐험대>에 권하는 조선시대의 흔한 노동들

정서희 기자
2014.01.06 10:00
[편집자주] ‘살아 있는 옛 시절을 산다’는 테마의 tvN (이하 )는, 올여름 2회분의 파일럿 방송 후 얼마 전 정규 편성됐다. 출연진인 남희석, 장동민, 유상무, 김동현, 조세호, 이상준, 김주호가 시대와 직업을 막론하고 과거 체험을 하겠다는 프로그램의 취지는 철저한 역사 고증을 거친 덕분에 더욱 실감 나게 구현된다. 그러나 노비와 유배 간 양반에 빙의하여 처참히 한 시대를 살아냈던 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을 어떻게 계속하느냐의 문제일 터. 는 시기를 조선시대로 한정하고 그들이 체험했으면 하는 다섯 개의 아이템을 추천하기로 했다. 실제 프로그램 제작 과정처럼 사료들을 기반으로 하는 성의도 담았다. 여 살라, 한 번도 고되지 않은 것처럼.

1. 고부민 되기

전봉준을 필두로 탐관오리의 숙청과 외세 축출을 구호로 내세웠던 동학농민 운동(1894)의 도화선이 된 첫 번째 사건은 고부민란이다. 민란의 주된 원인은 고부군수의 가렴주구에서 비롯됐다. 그는 “부민의 전엽 2만여 냥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고부군수의 “아버지를 위한 비각을 건립하는 데 1천여 냥의 돈을” 거두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러 온 상황. 그중에서도 보세를 강제로 거둔 일이 부민들의 고혈을 짰다. 호남지방의 평야 지대에는 물길이 범람하는 일이 잦아, 보나 제언을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출연진들은 정토산의 서쪽에 위치한 수금들에 농사를 지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곳은 정토산의 서쪽으로 정읍천이 흐르고 북쪽으로 태인천이 흘러 범람의 위험이 큰 곳이다. 따라서 출연진들은 수금들에 긴 둑을 쌓아야 한다. 예동들과 북촌들 사이에 있는 수금들의 범람은 “상류인 장순들에서 시작하여 긴 둑을 쌓아서” 막아야 한다. 둑을 쌓는 일은 유배에 가서 담벼락 보수를 한 경험이 있는 유상무와 김주호가 어울린다. 과거 고부군의 지도를 보고 수금들의 위치를 찾는 일은, < 시간탐험대 >에서 주인의 심부름과 전령을 담당하던 노비 기별이었던 장동민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이미 지도를 보고 용추사 주지스님과 안의향교 이진사에게 서찰과 선물을 전하고 온 경력자다. 아, 지난 방송에서 장동민은 따박따박 사또와 대거리를 펼치는 데 능했기 때문에, 절차에 따라 관의 허가를 받는 일 역시 그에게 맡기자.

2. 암행어사

암행어사는 조선 중종 때부터 400년의 역사를 이을 정도로 중요한 존재였으며, 정3품 이상의 대우를 받는 고위 관리에 속한다. 하지만, 신분이 높다고 육신이 평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암행어사는 백성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편이 되어야 했기에 “해진 도포와 망가진 갓으로 변변한 여비도 없이 암행길에 올라 좁디좁은 주막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 서수일기 >에는 암행어사의 업무 수행 시, 하루 동안 70에서 90리 정도(약 27.49~35.35km)를 이동했다고 나와 있다. 주로 말을 탔지만 신분을 감춰야 하는 업무 특성상 걸어 다니기도 했다는 게 포인트다. 제작진은 여러 켤레의 신을 준비하고, 협소한 크기의 주막과 그 안에 비루한 평상을 마련하는 게 좋다. 여기에는 유배지 노도를 향해 목에는 칼을 차고 짚신을 신은 채로 산길을 걷고 또 걸었던 지난 방송의 유배인 김동현에게 가장 어울린다. 정조 17년의 기록에 따르면 백성들의 고소와 진정을 합쳐 하루에 1천여 건이 쇄도했다고 한다. 소송장에 수결(서명), 판결문, 마패를 찍어 제출자에게 다시 돌려주는 게 업무였다. 양반의 소임을 다하느라 서책을 깨알같이 베껴 쓰던 장동민과 남희석에게 적합할 것이다. 아마 물 정도만 마시면서 일하면 될 것.

3. 옥살이

조선시대는 감옥이라는 용어가 아닌 옥으로 칭했는데, 옥에 대해 제대로 제도가 정비된 것은 세종 시기였다. 세종이 겨울용 한옥과 여름용 서옥을 따로 두었다지만, 중종 13년의 < 조선왕조실록 >에는 동짓달 찬바람에 30여 명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요즘 같은 겨울에 촬영하기에 제격이다. 다행히 10월부터 1월까지는 옥 안에 볏짚을 두껍게 깔아주도록 했다고 하니 입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뭐 좀 입자”며 유배지에서 누비옷을 걸쳐 입은 남희석과 장동민에게는 특히 혹독한 시련과도 같을 것이다. 옥중에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건 한 달에 한 번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 냄새에 적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손톱에 낀 때를 빼며 “한 번을 안 씻고 30시간을 있어” 본 조세호가 잘할 것이다. < 청장관전서 >에 따르면 아침저녁으로 5홉, 즉 하루에 한 되를 끼니로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굶어 죽을 자유라고 들어봤는지. 조선시대 옥살이에 그런 게 있었다고 한다. 노비 생활을 하며 밥을 못 먹어 예민해지는 바람에 김주호를 때렸던 난봉이 유상무의 반응을 지켜보자. 세 끼 같은 한 끼라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4. 침채 만들기

< 시간탐험대 >의 봄맞이는 조선 후기 음식 조리서인 < 음식디미방 > 속의 음식을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침채란 국물이 있는 채소절임을 뜻하는데, 제1의 후보는 생치침채다. 생치는 꿩을 뜻하는 단어로, 꿩을 잡을 수 있는 늦봄 촬영이 제격이다. “풀숲에 숨어서 뼈나 뿔로 만든 피리로 장끼의 울음소리를” 내서 유인한 뒤, 이때 “총이나 활을 쏘면 백발백중”이라고 했다. 촬영 준비는 ① 장끼 소리가 나는 피리 만들기, ② 다트로 명중 연습하기 정도가 되겠다. 칠향계를 만들기 위해 닭을 맨손으로 덥석 잡았던 김주호를 믿어보자. “외간든지(간이 들게 담근 오이로 추정) 껍질 벗겨 소옥(속) 아사 버리고 가늘게 한 치(한 자의 10분의 1=3cm 정도) 길이로” 썰고, “물 우려내 두고 생치를 삶아 그 외지히 같이 썰”면 된다. 만일 여건상 불가능하다면 < 산가요록 >에 나온 무를 이용한 청침채를 만들면 된다. “무를 한 켜 깔고 손으로 꼭꼭 누르면서 소금을 묻힌 후 다시 무 한 켜를 소금이 다 없어질 때까지 붙여 빈 섬으로 덮어 하룻밤 절여”야 한다. 이걸로 끝이 아니고, 무를 물이 맑아질 때까지 씻어 무 한 동이에 소금 열아홉 홉의 비율로 물에 타서 소금물만 받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잡은 닭 속에 삶은 도라지, 생강, 파 등을 정성스럽게 넣었던 조세호의 섬세함을 다시 기용하자.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음식을 만들다 보면, 고된 노동으로 피폐해진 그들의 척박한 마음에 따뜻한 감성이 생길지도.

5. 염간 되기

조선시대에 제염업에 종사한 이들을 염간이라고 불렀는데, 양인에 속하면서도 천역을 담당했던 직업군이다. 염간 한 사람은 20섬 정도의 소금을 세금으로 바쳐야 했고 왜구를 잡으면 이를 감면받았던 걸로 보아 그 노동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출연진들은 이 직업을 거절할 수 없지만 소금을 만드는 방식만은 선택할 수 있다. 첫째는 바닷물을 가마에 넣고 끓이는 해수직자법과, 둘째는 염전에서 바닷물을 채취한 후 가마에 넣고 끓이는 염전식이다. 입김을 불어가며 네 시간에 걸쳐서 불을 피운 경험이 있는 조세호와 김주호에게 바닷물 끓이는 노동이 어울린다. 일단 두 방식 다 끓여야 하기 때문에 땔감을 구해야 한다는 함정이 있고, 전자의 경우는 바닷물을 길어야 하는 업무가 추가된다. 나무는 당연히 어깨에 이고 운반해야 했는데, 평교자를 탄 대감마님(총합 135kg)을 어깨의 힘으로 들었던 김주호와 유상무에게 주무를 맡기는 것이 좋겠다. 하루 종일 바닷물을 졸이느라 눈썹이 새까매질 정도인 데다 이렇게 얻어지는 소금의 양이 적었다는 게 문제다. 염간은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버티는 직업이라는 각오를 미리 하길 바란다. 염간은 자신이 죽으면 아들이 이어받아야 할 정도로 “영원히 고통받는”, 일명 철밥그릇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정명희

-제23화. 갑오개혁복음면

-< 어머니의 수저 >, 외로움과 그리움에 대한 기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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