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술 앞둔 '개인정보보호법'...직장내 전자기기 '감시' 등 프라이버시권 폭넓게 고민해야
#1 "A씨 잡담하지 말고 똑바로 일하세요."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A씨(27)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직원들끼리 모여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관장이 즉시 무전기로 경고를 줬다. 분실물 방지나 돌발상황 때문에 설치됐던 CCTV가 직원 감시 용도로 둔갑해 있었던 것. A씨는 "관장이 '내가 다 봤다'고 하니까 할말이 없었다"며 "근무공간 대부분이 감시돼 숨이 막혔다"고 하소연했다.
#2 증권회사에 다니는 B씨(33)는 회사가 금연 정책을 펴면서 '죽을 맛'이다. 건물 출입카드가 '흡연 감시 카드'로 돌변했기 때문. 담배를 태우려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출입카드 때문에 '기록'이 남았다. 출입 횟수를 상부에서 집계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일부 직원들은 비흡연자인 여직원들의 카드를 빌려 드나드는 '꼼수'를 썼지만 이내 적발됐다. B씨는 "흡연 사실이 인사고과에 반영된다는 말이 있어 출입증을 찍는 것 조차 두렵다"고 토로했다.
회사가 보안이나 안전을 위해 도입한 전자기기들로 근로자를 감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3월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CCTV 등 감시 장비는 '동의' 하에 설치돼 '도입된 목적'으로만 사용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현장은 '무법지대'다. 전자기기 감시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차단할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회사 보안용 CCTV가 왜 날 비추지?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정보통신기기 발달로 인한 노동감시 등 부작용 사례'는 2008년 57건에서 2012년 162건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진정 내용 대부분은 '보안 등을 이유로 설치한 장비가 직원을 감시용으로 전락했다'는 내용이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1조에는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설치 목적과 다른 용도로 임의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추는 자 또는 녹음기능을 사용하는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CCTV나 블랙박스, RFID, 지문 및 홍체 인식 등 다양한 개인정보 수집 장비들은 초기 비판으로 시작해 '안전'에 높은 점수를 받아 긍정적으로 자리매김 하는 게 사실이다. 감시장비의 일상화로 비판 의식은 쉽게 사그라든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의식하지 못하는 '세련된 방식'의 통제가 더 무서운데 발달된 기기들은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설치하는 데 근로자의 동의를 얻기 쉽다"고 지적했다.
◇ 보안 CCTV 설치엔 동의하는데...감시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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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감시장비들이 제대로 된 동의없이 임의로 사용되고 있는 점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CCTV 등 장비를 설치하려면 직원들의 '동의'가 필수다. 하지만 이는 '목적 외 활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안전을 위해 도입된 장비가 직원 감시용으로 전락한다면 '동의'는 실효성을 잃어버린다.
지난해 인권위가 발표한 '정보통신기기에 의한 노동인권 침해 실태조사'에서도 직장 내 정보통신 기술로 인한 사생활 침해 및 미흡한 고지·인지 상황이 두루 포착됐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0%는 '직장 내에서 수집된 정보의 활용에 대해서 모른다'고 답했다. 반면 직장 내 정보통신기기로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된다'(64.0%)거나 '노동통제가 강화된다'(53.7%)는 내용에 과반수 이상이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감시장비 사용의 '목적 외 사용'을 방지하는 개인정보보호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개인정보 제공의 '포괄적 동의' 문제는 도마에 올랐지만 감시장비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성훈 인권위 정보인권담당은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을 계기로 강제적 동의 부분과 집단소송제 도입 관련 논의는 발판이 마련됐다"며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단순히 동의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닌 프라이버시를 포함한 포괄적인 문제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라이버시 침해 발생 시 집단소송 등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침해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감시기기 사전 등록제'나 '영상정보보호법' 제정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항우 충북대 교수는 "감시의 불가피성과 심지어 유용성까지 인정되고 있어 개인정보 보호화 활용은 정보 사회의 딜레마"라면서 "전면적으로 노동감시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사생활 침해를 일으키는 것을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