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ze] 박유천부터 택연까지, 아이돌 연기 평가서

[매거진 ize] 박유천부터 택연까지, 아이돌 연기 평가서

한여울 기자
2014.03.18 10:00
[편집자주] 월화 미니시리즈부터 일요일 심야 드라마까지.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들은 연기를 놓고 벌이는 여러 아이돌들의 각축전이다. 단순히 많이 출연해서만은 아니다. 정극을 이끌어가는 주연은 물론이고 이제 막 배우로서의 경력을 시작하고 있는 멤버들까지, 아이돌들은 제각각 눈에 띄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배우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거나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며 연기자로서의 변곡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가 영화 , 의 윤성호 감독과 KBS 기획 프로듀서이자 드라마 작가인 CJ E&M의 배종병 PD, 김선영 TV 평론가와 함께 아이돌들의 연기를 평가한 이유다. 평가 후보로는 SBS (이하 )의 바로와 한선화, SBS 플러스 의 한승연, SBS 의 박유천, MBC 의 엘, tvN 의 윤두준, KBS 의 옥택연, OCN 의 전효성까지 총 8명을 선정했으며 방영되는 요일순으로 정리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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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 신의 선물 >

한여울: 카메라를 향해 강렬한 표정을 짓는 B1A4 바로와 카메라가 없는 듯 움직이는 배우 바로는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바로는 극 안에서 과장되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을 지우며 캐릭터를 선명하게 만들 줄 안다. tvN < 응답하라 1994 >의 빙그레와 자신을 피하는 사람들 때문에 주눅 든, 6세 지능을 가진 < 신의 선물 > 기영규 모두 제각기 생명력을 갖는 이유다.

윤성호: 나는 B1A4를 좋아한다. TV랑 처음 작업했던 시트콤(MBC every1 <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에서도 시리즈의 오프닝 송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B1A4의 ‘Beautiful Target’을 썼다. 따라서 이 엔터테이너에게 객관적일 수 없다. 일단 귀여운 외모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귀여워 보일 수 있는(연약해서 케어하고 싶어지는) 역할을 주문받는 듯하다. 전작에서도 선방했고 아마 < 신의 선물 >에서도 그런 특징 있는 캐릭터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팔팔한 청춘을 좀 더 다른 장르, 그리고 본인의 개성이 보다 반영된 캐릭터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건 뭐 연기 평도 뭣도 아니고 그냥 내 바람이다.

김선영: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에 미묘하게 서 있던 빙그레에 이어 두 번째 배역에서도 쉽지 않은 역할에 용감하게 도전했다. 20대 초반이지만 6세 지능에 머물러 있는 지적장애인 영규를, 바로는 특유의 약간은 주눅 들고 순진한 표정으로 소화한다. 하지만 6세 지능이라고 해서 마냥 천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김유빈이 연기하는 9세 샛별이의 다양하고 입체적인 표정 연기와 비교한다면 캐릭터 표현의 폭이 좁은 점은 꽤 아쉽다.

&copy;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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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화, < 신의 선물 >

한여울: 사흘 동안 씻지 못해 몸을 긁적이거나 대놓고 섹시함을 어필하는 < 신의 선물 > 제니에게서 애교 많은 한선화는 찾아볼 수 없다. 사기 전과 5범이라는 센 캐릭터에 맞게 대사의 리듬은 여유롭고, 순간적으로 눈, 코, 입을 찡그리며 짓는 강한 표정도 자연스럽다. KBS < 광고천재 이태백 >의 이소란처럼 뮤직비디오에서 갓 튀어나온 듯 활짝 웃는 표정에 한층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극에서 튀는 일은 이제 없을 듯하다.

김선영: 두 번째 작품에서 벌써 배역을 즐기는 게 눈에 보인다. ‘초절정 양아치’ 기동찬(조승우) 못지않은 ‘초절정 날라리’ 제니 역의 그녀는 대선배 조승우의 기에 전혀 눌리지 않는 통통 튀는 강한 탄성을 보여준다. 기동찬 패거리의 일원인 탓에 단독 샷보다 단체 샷이 더 많은데도 디테일한 캐릭터 표현이 눈에 들어올 정도다. 1회의 무단침입한 집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주인이 들어오자 태연하게 화투를 입에 무는 모습은 뻔뻔한 제니 그 자체였다.

배종병: 우선, 예쁘고 청순한 캐릭터만을 연기하던 여타의 여자 아이돌 멤버들과는 달리 꽃뱀 역할로 파격적인 변신을 한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섹시함과 발랄함을 동시에 어필하면서 연기파 배우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기 몫을 당당하게 해내며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어 배우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싶다. 다만, 분량이 적어 조금 더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copy; SBS플러스
&copy; SBS플러스

한승연, < 여자만화 구두 >

한여울: 배우는 몰라도,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마저 인형 같다면 곤란하다. 같은 리듬으로 나열되는 대사와 기분 좋을 때, 슬플 때, 화날 때 등 정해진 몇 가지 표정들로만 만들어지는 < 여자만화 구두 >의 신지후에게 생동감이란 없다. 옛 애인의 등장에 화가 나 눈을 찡그리는 신지후는 야망이 넘친다는 듯 늘 눈썹을 치켜뜨곤 했던 SBS < 장옥정, 사랑에 살다 > 최무수리와도 별다른 점이 없다. 둘 다 스틸컷으로만 봤으면 더 좋았을 케이스.

윤성호: 큰 무대를 두루두루 거쳐온 퍼포머로서 분명한 강점이 있다. 노래의 단락마다 설정된 희로애락의 정서를 청중들이 바로 알 수 있게 표현하는 것이 가무의 요령. 따라서 확실한 감정 표현을 지시받은 신에서 한승연은 제 몫을 한다. 다만 극 속의 연기자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또 다른 레이어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 여자’는 누군가에 설레는 동시에, 배가 고프기도 하고, 익명의 시선도 의식하며, 불쑥 나오는 원래의 말버릇이 있는 우리 옆의 입체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극의 주요한 모티브를 책임지는 역보다는 그런 일상이 몸에 밴 듯 구현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조역들을 수행해보는 것도 좋은 과정이 될 거다.

&copy;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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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천, < 쓰리 데이즈 >

한여울: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한태경은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때문에 한태경은 시청자가 그에게 몰입하기 사실상 불가능한 캐릭터다. 박유천은 낮고 다정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단단하지만 귀하게 자란 남자 같은, 그래서 강한 남성성으로 극을 휘어잡는 일반적인 추리극 주인공과는 다른 인물을 그리고 있다. 과연 박유천이 추리극 주인공의 새로운 타입을 만들지, 무게감이 부족한 주인공에 머물지는 미지수지만 앞으로도 그의 연기를 지켜볼 만한 흥미로운 포인트다.

윤성호: 박유천은 명백한 스타다. 대중 스타로서의 몫을 분명히 해낸다. 애초에 ‘스타’ 아우라로 시작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원체 발성과 딕션도 좋다. 목소리도 귀에 쏙쏙 잘 박힌다. 사람들의 취향을 떠나 이런 배우에게 사람들은 집중할 수밖에 없다. 성균관의 과묵한 유생이나 타임슬립한 왕세자 등등 소년 같은 외모를 언덕 삼은 작품만으로 정주행 할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형사·경호원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종횡하며 ‘상남자’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소화할 이미지도 획득했다. 다만, 그런 중후한 행보로만 일관하지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더 유희적인 역할도 하고 영화도 했으면 좋겠다. 워낙 한류 스타이기에 이 배우를 활용한 가장 합리적인 투자 행동은 16부작 극인 걸 안다. 하지만 영화는 이 배우에게, 관객에게 또 다른 층위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거다.

배종병: 시청자들에게 이젠 연기를 병행하는 아이돌이라기보다 연기자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되어 있다. 우수 어린 이미지와 보이스, 감성적인 면이 도드라지는 자신만의 분위기를 본인의 장점으로 캐릭터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 쓰리 데이즈 >에서 역시 모성 본능을 일으키는 감성적인 면과 내면의 강인함을 드러내는 한태경이라는 인물로 최적화된 연기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은 박유천이라는 배우의 외피를 입은 캐릭터보다, 캐릭터화된 배우 박유천을 보고 싶어 할 때가 된 듯하다.

&copy; MBC
&copy; MBC

엘, < 앙큼한 돌싱녀 >

한여울: 말을 얼버무리는 듯한 발성과 여러 감정을 단조롭게 표현하는 표정 등 기초는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길요환이 가진, 늘 수다스럽고 모든 감정을 크게 표현하는 로맨틱 코미디 안에서의 특성은 tvN < 닥치고 꽃미남 밴드 >, SBS < 주군의 태양 > 때와 달리 엘을 통통 튀게 만들어준다. 고기도 못 굽겠다고 투정 부리는 차정우(주상욱)에게 능청스럽게 훈계하는 장면에서 엘을 재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김선영: 연기력에 비해 큰 배역을 맡으며 경직돼 보였던 전작에서보다 확실히 좀 더 편안한 옷을 입은 듯하다. 약점인 부정확한 발음은 여전하지만, 단조롭던 표정과 대사 톤이 깐죽대는 비서 길요한 캐릭터를 만나 풍부해진 것은 큰 성과. “형”과 “사장”의 경계를 넘나드는 차정우 역 주상욱과의 연기 궁합에서는 종종 여유마저 보인다. 비중은 적지만,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 옆에서 촌철살인의 대사를 날리며 감정을 각성하게 돕는 장르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copy; tvN
&copy; tvN

윤두준, < 식샤를 합시다 >

한여울: 탄탄한 발성, 적절한 지점에서 대사를 끊어 읽는 센스, 자연스레 대사를 따라가는 듯한 표정까지 윤두준은 구대영을 연기하며 안정적인 배우의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윤두준은 가벼운 옆집 총각과 카리스마 있는 연하남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분량과 관계없이 극의 흐름을 가져왔다. MBC < 볼수록 애교만점 >, KBS < 아이리스 2 >를 통해 무섭게 성장해왔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윤성호: 명석하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의 클리셰 중 하나가 주어진 미션에 격하게 충실한 수련 과정을 겪다 보니 전후좌우 돌아보지 않고 자기 대사만 또박또박 열심히 읊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단 < 식샤를 합시다 >의 윤두준은 그렇지 않다. 극 중 맥락과 상대 캐릭터와의 관계에 따라 대사의 텐션과 표정의 온도를 쥐었다 놨다 할 줄 안다. 좀 더 서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고르기 시작한다면 지금 현재진행형의 아이돌 중에 가장 대성할 연기자라고 생각한다.

배종병: 비스트의 멤버, 연기를 병행하는 아이돌 중 한 명 정도의 위치였다. 하지만 < 식샤를 합시다 >를 통해 윤두준은 확연하게 연기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자신이 가진 외적인 장점을 십분 활용할 줄 아는 유연함까지 보여주었다. 이제 특별함이 없던 훈남 아이돌 연기자에서 능글맞고 능청스러우면서 카리스마까지 담아낼 줄 아는 다면적인 얼굴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가 된 윤두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copy; KBS
&copy; KBS

옥택연, < 참 좋은 시절 >

한여울: < 참 좋은 시절 > 속 옥택연의 연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 있다. 눈은 졸리지 않아 보이는데 과하게 하품을 하거나 늘 이글거리는 눈빛은, 강동희보다 ‘연기하고 있는’ 옥택연을 보게 한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다가도 철없이 어른들에게 소리 지르고 대드는 강동희의 다양한 감정선을 소화하고 경상도 사투리까지 어느 정도 익혀가는 듯싶지만, 아직은 옥택연이 극 안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다.

배종병: 2PM은 남자다운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남자 아이돌이고, 택연은 그 이미지의 중심에 있는 멤버이다. 드라마에서 역시 그러한 이미지를 차용한 캐릭터들을 주로 맡아왔다. 불안한 발성과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력을 가지고 있긴 하나, 옥택연이라는 배우에게 대중이 요구하는 혹은 기대하는 캐릭터에는 항상 충실한 연기를 한다. < 참 좋은 시절 >의 강동희 역시 거칠고 과격하지만 진심이 있는 캐릭터이다. ‘상남자’의 외형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정성 있는 캐릭터를 표현하기엔 맞춤형 배우이나, 다음 드라마에서는 조금 다른 캐릭터를 입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전효성, < 처용 >

한여울: 경찰서를 떠돌며 모든 형사들 일에 간섭하는 왈가닥 여고생 귀신을 맡았다지만, 전효성의 연기에는 강박적인 면이 있다. 잘생긴 형사를 봐서 기쁘고, 파렴치한 범인을 보고 화가 나며, 끔찍한 장면 때문에 무서워하는 등 모든 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고조로 표현된다. 슬프면 찡그리고 놀라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표현 방식도 다소 단순하다. 첫 연기임을 감안할 때 대사 처리는 준수하지만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 또한 명확해진 셈이다.

김선영: 발랄한 여고생 유령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열심히 소화하고는 있지만, 머릿속으로 ‘이렇게 연기해야지’ 생각하는 것이 티가 나는 전형적인 초보자 연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가운데 혼자 떠드는 유령의 모습이 설정 때문이 아니라 겉도는 연기 때문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데뷔작부터 주연급 배역을 맡은 부담이 연기에 그대로 드러난 탓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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