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인이 뮤지컬을 하는 경우는 회사 차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직접 지원서를 제출해서 < 보니앤클라이드 > 제작팀이 놀랐다고 들었다.
가희: 그동안 몇몇 뮤지컬들과 얘기가 진행되다가 무산됐었다. 그러던 중 (소)유진이가 이런 작품 오디션이 있는데 한번 보라고 얘기를 해줘서 회사에다가는 무슨 작품인지도 얘기 안 하고 그냥 원서를 냈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도 회사가 꽂아줘서 들어온 줄 알았다고 하더라. 이번에는 남들 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하고 싶었고 진지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이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게 훨씬 좋았다. 회사에서 이것저것 일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회사와 별개로 접했던 거고, 그래서 더 회사의 힘을 빌리거나 기대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나?
가희: 오히려 나를 믿어줬다. 원래 혼자 잘 하니까 알아서 해보고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겠다고. 어린 친구들이야 아이돌이니까 (웃음) 회사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나는 이제 서른다섯이잖아.
보니는 실재 인물이고, 트러블메이커는 이들의 얘기에 영감을 얻어 ‘내일은 없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초연 때는 리사의 소녀 같은 보니도 있었는데, 가희의 보니는 어떤 느낌인가.
가희: 내가 생각하는 보니는 좀 시크하다. 미국이라기보다는 유럽에 가까운 느낌? 거기에 촌스러운데 자기는 굉장히 패셔너블하다고 생각하는 엉뚱한 지점도 있고 백치미도 있고. 그러다 여자로 성숙해나가는 자아를 가진 것 같다. 처음과 끝이 같지 않고 점점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 속에 있는 인물이라 굉장히 어려운 캐릭터인 것 같다.
기존에 했던 무대가 3~4분간 그 순간의 감정을 그려내는 것에 반해 뮤지컬은 2시간 동안 한 인물의 서사를 보여주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가희: 그 부분이 가장 힘들다. 매 순간 계속 쉬지 않고 진짜로 빙의되어서 해야 된다는 것. 무대나 드라마, 영화도 다 초집중해서 만들어내지만 뮤지컬은 그 에너지가 2시간 동안 계속되어야 하니까. 매 순간 진심으로 얘기하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솔직히 아직은 왔다 갔다 한다. (웃음)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가희: 연습하면서 “지금 한 거는 그냥 가희야” 이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성격상 오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예능을 나가도 “저요! 저요!” 하고 나서질 않는다. 그런데 보니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지점들이 있다. 내가 스타고 내가 제일 예쁘고 꼭 그렇게 될 거야! 라는 에너지가 있으니까. 그게 잘 안 나오는 것 같아서 요즘은 굉장한 오버를 하고 있다. 말투부터. (웃음) 그래도 꿈과 열정, 희망만 가지고 사는 보니는 가수가 되려고 댄서를 하고 연습생을 하던 그 시절의 나와 많이 비슷하다. 그래서 측은하기도 하고. 지나온 내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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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함께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이해가 가던가.
가희: 굉장히 단순무식하지만 그 지점이 정열적으로 보였다. 나도 한 가지에 꽂히면 확 가는 스타일이고 좀 단순하거든. 예전에는 정말 한 사람을 사랑하면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미친 듯이 사랑했다. 그래서 보니 같은 사랑을 하고 그런 인생을 살았다면 충분히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하루에 충실하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웃음)

클라이드가 엄기준, 에녹, 키, 박형식까지 총 넷이다.
가희: 기준 오빠는 너무 베테랑이라 애드리브를 사정없이 치셔서 받아치질 못하겠다. 난 어떻게 하라고. (웃음) 거기에 빨리빨리 대응할 수 있는 감각을 키워야 할 것 같고. 에녹 오빠는 성량에서부터 확 차이가 나서 내가 그냥 잘 묻어가면 될 것 같다. 형식이는 아이돌이 뮤지컬을 한다는 생각을 아예 깨버려서 오히려 내가 더 배워야 할 점이 있다. 이제 키가 걱정이다. 작품에 워낙 키스신이 많은데 너무 친해서 그것들을 어떻게 소화해야 될지… 웃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뮤지컬을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모습이 있나?
가희: 솔직히 내가 이렇게 노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놀라운 발견이다. (웃음) 노래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가요에서는 할 수 있는 무대가 한정적이었고, 사람들에게 춤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걸 보여주기가 더 힘들었다. 지금은 정말 노래를 원 없이 하고 있다.
발성이 달라 고생하지 않았나.
가희: 많이 부딪혔다. 근데 그 부분에 너무 연연하면 뮤지컬 흉내를 내는 것 같아서 필요한 부분은 채우되 내가 편하게 부르던 것처럼 노래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대사에 멜로디를 입히듯 하자고 하니 좀 풀리는데, 대사로 생각하니 딕션이 걸려서 또박또박 부르면 또 어색하고. (웃음) 쉽진 않은데 재밌다.
서른다섯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가희: 도전정신이 생겨야 아드레날린이 샘솟는다. 긴장감을 즐기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혼나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 (웃음)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는데, 누가 옆에서 너 이거는 이렇게 해야 되고 저건 저렇게 해야 된다고 그러면 눈이 더 반짝거린다. 사실 배우들 대부분이 초연에 참여했던 이들이라서 서로 호흡이 잘 맞는데 나만 딱 들어온 느낌이기도 했고, 이방인처럼 생각할까 봐 걱정한 부분도 있다. 근데 못해도 막 당당하게 해버리니까 선배님들이 칭찬해주시더라고. (웃음)
퍼포머는 무대 위에서 내가 다 끝장내주겠어! 라는 각오가 중요하니까. (웃음)
가희: 그럼! 애프터스쿨 졸업, 솔로를 거치면서 입었던 갑옷을 벗었다가 지금은 기죽으면 안 된다는 느낌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체력적으로 기가 좀 딸리는 느낌도 있지만. (웃음)

졸업 얘기를 했는데, 20대를 가수가 되겠다는 의지로 달려왔고 그 목표를 스물아홉에 이뤘다. 간절히 얻은 것을 놓는다는 것에서 공허함을 느끼진 않았나.
가희: 공허하지 않으려고 계~속 뭘 찾으려 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3개월간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면서 다 내려놨다. 한참 서핑에 꽂혀서 매일 서핑하고, 스케이트보드 타고, 못 만났던 친구들 만나고. 원래 술을 못 마시는데 술 몇 병 마신 사람들보다 술자리에서 더 재밌게 놀아서 다른 사람들이 “술 많이 드셨나 봐요” 할 정도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가수 데뷔하고 나서는 아이돌이라서 그랬는지 누구를 만나도 통성명도 못 하고 형식적인 일들만 했다. 그게 어느 순간 싫어지기 시작했는데, 쉬면서 본래 내 성향을 찾아낸 것 같다. 한 단계 성장한 계기가 된 것 같아 그 시간이 굉장히 감사하다.
그래서 두 번째 솔로 앨범의 ‘It’s Me’도 기존의 가희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건가.
가희: 그때는 정말 ‘내가 무대에서 뭔가를 보여주겠어!’ 이게 아니었다. 억지로 한 게 하나도 없었고, 곡이나 안무, 스타일링까지 내가 느끼는 걸 자유롭게 표현했다. 음원 성적 등을 생각했으면 ‘Sinister’ 같은 곡을 물랑루즈나 벌레스트같이 섹시한 쇼걸 느낌으로 만들어서 타이틀곡으로 했을 거다. 그런데 요즘 아이돌들이 너무 다 섹시하기도 하고 그들과 같이 가는 건 싫고 내 색을 찾아가자 해서 타이틀곡을 ‘It's Me’로 결정했던 거다. 섹시보다는 멋지게, 하지만 여자니까 어쩔 수 없이 배어 나오는 십 원어치의 섹시를 살리자, 그런 작전이었는데 오점을 남겼지. 순위가 너무 안 오르더라고. (웃음)
가수 혹은 댄서의 이미지가 강한데, 웹드라마 < 아직 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 KBS < 드림하이 2 >에 출연하기도 했다. 연기로 방향 선회를 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가희: 연기에 대해서 예전에는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수로 데뷔하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관심도 생기게 됐다. 레슨도 받고 관계자들도 만나면서 준비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기존의 모습과 새로운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어서 유진이한테 내 인생을 바꾼 친구라고 말한다. (웃음) 뭔가 인생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
‘인생의 변화’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웃음)
가희: 계속 이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가수에게 있어서 예능도 중요하다. 안 나가면 인지도를 얻을 수 없으니까. 근데 그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이 다 끊기고 오직 무대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 기분을 얼마 만에 느낀 건가.
가희: 한 2년 정도. 2012년에 일본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그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는 정말 완벽주의자였다. 드럼스틱 한 번 떨어뜨렸다고 눈물 흘리고,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있었다. 왜 연습을 저렇게밖에 안 하지? 그냥 연습시간이니까 하나?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라이브에서 나오는 빈틈이 재밌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들이 달라지고 좋아졌다. 대사 까먹으면 까먹은 대로 나오는 애드리브라든가 소품이 없어지면 다시 찾아내는 어떤 것들. 그런 것들이 다시 나를 살게 해준다.
여러 변화를 겪으며 서른다섯 해를 보냈는데, 본인의 강점은 찾았나.
가희: 나를 알려면 아직도 먼 것 같다. 하지만 뭐든 열심히 하고 지치지 않는다는 게 내 강점이다. 노력만 한 재능은 없는 것 같아서 되게 무섭다. 어린 친구들이 많은데 걔네들은 요만큼만 해도 티가 확 나지만 나는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제 에너지가 많이 드니까. 세상이 너무 빠르다.
인터뷰. 장경진,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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