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배아 유전자 실험…윤리 논쟁 재점화

인간 배아 유전자 실험…윤리 논쟁 재점화

테크M 편집부
2015.06.03 05:05

치료제 개발, 동·식물 연구 활발…관련 규정 없어 문제

유전자 교정을 다룬 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
유전자 교정을 다룬 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

영화 ‘가타카’는 간단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선천적인 능력과 질병 유무를 파악할 수 있는 미래 사회를 그린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유전자 분석 결과에 따라 차별대우를 받는다. 결국 부모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열성 유전자를 제거한 자식을 만들어낸다. 최근 유전자 교정기술이 발달하면서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조작하는 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유전 형질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배아 유전자를 조작하는 연구를 멈추자는 선언도 있었다. 하지만 우려와 자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교정실험이 이뤄졌다.

학계에서는 이번 실험 수준이 낮고 과학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결과도 아니라고 평가절하 한다. 오히려 유전자 교정기술 연구자들은 배아 교정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의 영향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은 시기상조

4월 온라인 저널 프로테인앤셀(Protein&Cell)에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 실험에 대한 논문이 게재됐다. 중국 순얏센대 황준쥬 박사 등 16명의 연구진이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 논문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서 게재가 거절된 뒤 온라인 오픈 저널을 통해 공개됐다.

연구진은 인간 배아를 사용했다는 윤리적 논쟁을 피하기 위해 난자 하나에 정자 두 개가 수정된 수정란을 이용했다. 시험관 아기 시술에서 종종 발생하는 이 수정란은 초기 단계에서만 발생이 일어날 뿐 정상적 태아로 자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바나나 곰팡이 TR4에 감염된 바나나의 단면
바나나 곰팡이 TR4에 감염된 바나나의 단면

연구진은 수정란을 대상으로 중증 유전질환인 베타 지중해성 빈혈의 원인 유전자를 교정하는 실험을 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베타 지중해성 빈혈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제거하고 다른 염기로 대체하는 실험이다.

실험에는 86개의 수정란을 사용했다. 하지만 성공률이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또 실험에서는 표적으로 삼은 유전자 부위 외에 의도하지 않은 부위도 자르는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비율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정상적인 배아에 유전자 교정을 적용하려면 성공률이 100%에 근접해야 한다”며 “인간 배아에 유전자 교정을 적용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평가했다.

김진수 서울대 화학과 교수는 “배아에서 유전자 교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라며 “3세대 유전자 가위 초기 기술을 이용했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곳이 수정되는 경우도 많고 논문 수준도 낮다”고 평가했다.

이번 실험에는 3세대 유전자 가위인 ‘CRISPR/Cas9 기법(이하 크리스퍼 기법)’이 사용됐다. 크리스퍼 기법은 표적 유전자를 찾아가는 크리스퍼라는 RNA와 DNA을 절단하는 효소인 Cas9을 이용하는 기법으로 2013년 처음 가능성이 제시된 후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특히 1세대 유전자 가위 ‘징크핑거뉴클레이즈(ZFN)’, 2세대 ‘탈렌(TALEN)’에 비해 다루기가 쉽기 때문에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급속이 확산되고 있다.

김진수 교수는 “크리스퍼 기법은 수많은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개선된 실험 방법이 나오고 있다”며 “2년 동안 매우 빨리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실험이 3세대 유전자 가위를 사용했지만 낡은 기법을 사용해 성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도 “최신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 논문은 임팩트가 없다”고 평가했다.

김 소장은 “인간 복제의 경우 기술 장벽이 높아 쉽지 않지만, 인간 배아 교정은 하려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이번 실험을 계기로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서 윤리 행동기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형범 연세대 의대 교수는 “윤리적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며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정상배아로 실험하는 반면 이번 실험은 비정상배아를 이용해 윤리적으로는 더 제한된 범위에서 연구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 같다”며 “당연히 모든 단계마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생명윤리학자와 함께 윤리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 교정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

한국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은 유전자 교정 연구의 중요 관심사가 아니며 유전자 교정기술은 몇 년 안에 다른 영역에서 인간에게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치료제 연구가 대표적이다.

유전자 교정기술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의 경우 국내에서는 김진수 교수와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가 공동연구를 통해 역분화줄기세포에서 뒤집어진 혈우병 유전자를 다시 뒤집어 정상으로 돌리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중증 혈우병은 유전자의 일부가 뒤집혀있어 혈액응고물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발생한다. 뒤집어진 유전자를 원래대로 만들면 중증 혈우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공동연구팀이 역분화줄기세포 실험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세포치료제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김진수 교수는 “혈우병은 간세포의 1%만 고쳐도 치료효과가 있다”며 유전자 교정을 통한 혈우병 치료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해외에서도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질병 치료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1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상가모 바이오사이언스는 유전자 교정으로 T세포에서 CCR(C-C chemokine receptor type)5를 제거하는 에이즈 치료에 대한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HIV)는 면역세포인 T세포에 침투할 때 CCR5를 이용한다. 유전자 교정을 통해 CCR5를 제거하면 HIV가 T세포에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세대 유전자 가위 기업인 셀렉틱스도 글로벌 제약기업 화이자와 함께 CAR-T(Chimeric Antigen Receptor-Therapy) 세포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CAR-T 세포는 특정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항원 수용체를 이용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T세포로 암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다. CAR-T 세포 치료제는 환자 본인의 T세포만 이용할 수 있지만 유전자 교정을 통해 타인의 T세포도 활용할 수 있다. 김석중 소장은 “다른 사람의 T세포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치료제 생산량과 생산속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며 “차세대 치료제로서 유전자 교정기법을 적용한 CAR-T 세포 치료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석중 소장은 “올해나 내년에 1세대나 2세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치료제들의 임상시험이 여러 건 준비되고 있다”며 “몇 년 안에 유전자 교정기술의 영향이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했다.

치료제 외에도 유전자 교정을 적용한 동.식물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툴젠에서 개발한 ‘근육 두 배(double muscle) 돼지’가 대표적이다. 근육 두 배는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없을 때 생기는 형질로, 말 그대로 몸 근육이 두 배 많아진다.

일반적으로 자연적 돌연변이에 의해 근육 억제 유전자가 없는 가축이 태어나지만 유전자 교정을 이용하면 인위적으로 근육이 두 배 많은 형질을 가진 가축을 만들 수 있다.

김진수 교수는 “툴젠은 현재 근육 두 배 형질을 가진 10여 마리의 수컷 돼지를 기르고 있다”면서도 “식약청 허가가 있을 때까지 판매를 미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만든 것에 대한 인허가 규정이 없어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소비자들의 수용성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논의와 소통의 기회가 적다. 과학자, 생명윤리학자, 시민단체 등이 모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식물 분야에서도 유전자 교정을 통해 새로운 형질을 가진 작물을 개발 중이다. 벼와 밀에서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파괴해 병 저항성이 높은 작물을 만들기도 하고 옥수수 유전자 교정을 통해 영양 성분을 높인 품종을 만들기도 했다. 또 아프리카 등에서 주요 식량자원인 카사바의 독성을 제거하기 위한 유전자 교정 연구나 카페인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교정해 카페인이 없는 커피나무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이런 연구들과 관련해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에서 유전자 교정을 통한 식물 육종을 연구하고 있는 김상규 박사는 “GMO의 기준에 대한 과학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GMO는 국가에 따라 세부적인 기준은 다르지만 외부 유전자가 작물에 들어가는지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김 박사는 “크리스퍼 기법는 외부 유전자가 식물 세포에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GMO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유전자 교정이라는 새로운 육종 기술이 열어놓은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크리스퍼 기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작물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도강호 기자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은 툴젠과 함께 ‘바나나 세이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과거에는 맛도 좋고 대량 생산에 적합한 그로미셜이라는 바나나 품종이 경작됐다. 하지만 1900년대 중반 TR1이라는 곰팡이균이 일으킨 병 때문에 그로미셜은 절멸했다.

현재는 TR1에 내성을 가진 카벤디쉬 품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1990년대 동남아시아에서부터 TR1과 유사한 TR4가 카벤디쉬를 감염시키고 있다. 필리핀에서만 4억 달러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TR4에 내성을 가진 바나나 품종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전체교정연구단은 바나나 세이브 프로젝트에서 유전자 교정을 통해 TR4에 내성을 가진 바나나 품종을 만들 계획이다. 먼저 TR4 감염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바나나의 병 민감성과 관련되는 유전자 목록을 선별해야 한다. 그 다음 유전자 교정을 통해 해당 유전자의 변이를 유도하고 실제로 TR4에 저항성을 갖는지를 테스트해야 한다. 또 선별된 바나나들이 실제 필드에서도 저항성을 갖고 그러한 내성이 여러 세대 동안 유지되는지에 대한 연구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윤재영 박사는 “바나나 세이브 프로젝트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한 만큼 유전체교정연구단은 전 세계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국제적 컨소시엄을 추진 중”이라며 “현재까지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국, 중남미 등을 중심으로 많은 바나나 연구자들이 참여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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