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세계 에이즈의 날' 쪽방촌에 고립된 빈민 에이즈 환자들…"정부, 사회의 관심 부족"

#차디찬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26일,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A씨의 쪽방은 아침 저녁으로 라면 냄새만 풍겼다. 물병과 휴대용 가스렌지, 냄비 등 가재도구가 방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 옆으로 방금까지 A씨가 몸을 뉘였던 이불이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빛이라곤 하루종일 틀어놓은 텔레비전 화면뿐이었다.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수급비 50만원 중 방값 25만원을 뺀 나머지 25만원이 A씨의 한달 생활비다. 한달에 130만원이 넘는 약값을 전액 국비로 지원받지만 생활은 만만치 않다. A씨는 "체력이 떨어지고 숨이 차 문밖으로 나오는 것도 쉽지 않다"며 "낫지도 않는 병, '언제 죽으려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1일 '세계에이즈의 날'을 맞아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고 차별을 없애기 위한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높지만, 여전히 관심의 시선과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특히 에이즈 환자 중 빈민들은 병마와 생활고, 사회적 낙인 등으로 인해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다 안전한 예방·관리를 위해서라도 빈민층 에이즈 환자들을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쪽방촌에 고립된 빈민 에이즈 환자들…생활고에 범죄까지=1일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HIV·AIDS 신고 현황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내국인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보균자는 9615명에 이른다. HIV는 체내 농도가 높아질 경우 에이즈를 발병시켜 신체의 면역력을 떨어트리며 완치는 아직까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이즈 환자는 본인의 의지를 갖고 적절한 치료와 도움을 받는다면 일정 수준의 면역력을 유지하면서 일반인과 비슷하게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쪽방에 고립된 빈민층 에이즈 환자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A씨는 체력과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걷다보면 금방 숨이 찬다. 인근 무료 급식센터까지 가는 것조차 벅차다. 결국 집 앞에서 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한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유소 아르바이트도 해봤으나 힘에 부쳐 관두고 말았다.
A씨는 "좁은 방에서 텔레비전만 쳐다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소일거리"라며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소주를 들이킨다"고 털어놨다.
생활이 열악하다 보니 범죄에 손대는 환자도 있다. 쪽방촌에 살던 다른 에이즈 환자 B씨는 상습특수절도 혐의로 기소돼 지난 6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생활고에 못이겨 10여차례에 걸쳐 12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다 경찰에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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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소리 싫어"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지역사회 도움 절실=전문가들은 빈민층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관리와 치료가 어려운 이유로 에이즈에 대한 낮은 교육 수준과 낙인 효과를 꼽는다. 적절한 관리·치료 방법을 접할 기회가 제한적이고, 환자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두려움 때문에 심리 치료나 주거지 마련 등의 추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실제로 A씨가 2년 동안 병원을 다니면서 받은 혜택은 2달에 1번씩 내원해 받는 내복약과 50만여원의 기초생활수급비 정도가 전부다.
이재성 한국구세군 복지사업부 사관은 "노숙인 등 빈민층 에이즈 환자들은 인터넷과 휴대폰 등 정보기기를 이용하기 쉽지 않다 보니 에이즈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며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거리낌 때문에 병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중앙 정부가 빈민층 에이즈 환자 전부를 완벽히 관리하기는 어려운 만큼 지역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욱진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빈민층 에이즈 환자들을 모아 지역사회에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며 "꼭 시설을 갖추지 않더라도 일자리와 사회적 활동의 장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