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겨울,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개성공단을 방문한 적이 있다. 환경부 산하 준정부기관으로서 한국환경공단은 개성공단에서 공장 폐수, 생활 오수 등을 처리하는 폐수종말처리시설과 사업장, 일반폐기물을 소각·매립하는 폐기물처리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2003년 착공 이래 어느덧 10년을 넘긴 개성공단은 현재 123개 기업에 53,000여 명이 근무하고, 하루 평균 7,000~8,000㎥의 폐수와 7~8톤의 소각 폐기물이 발생하는 대규모 산업단지로 발전했다. 남북 경색 국면에 따라 때론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개성공단은 아직까지 남과 북을 이어주는 끈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개성공단에서 남과 북의 환경협력의 현장을 직접 보니 뭉클하기도 했고, 환경공단이 납북협력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생경한 많은 장면과 감동적인 경험 속에서도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개성공단 울타리 넘어 보이던 민둥산들이었다.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 겨울인데 산이 허하다 보니 북한의 혹독한 겨울 날씨가 더욱 사납게 느껴졌었다. 멀리 보이는 민가는 쓸쓸해 보이고, 들판은 황량해 보여 고생할 북한 주민들을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2012년 북한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산림면적은 1999년 916.57만㏊에서 2008년 899.25만㏊로 감소했으며, 장작 등 연료로 활용하기 위한 숲 면적은 1990년 1,944㎢에서 2005년 3,988㎢으로 대폭 확대되는 등 산림 황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한 개간, 외화 획득을 위한 벌목도 산림 황폐해지는 주요인이다. 북한 산림의 약 90%는 이미 벌거숭이가 되어 그 피해는 홍수, 가뭄,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의 형태로 주민에게 돌아오고 있다.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환경공단 직원들에 따르면 북한 근로자들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목이 높은 장화를 신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산에서 머금지 못한 빗물이 그대로 평지로 흐르기 때문이다. 지각 사태도 종종 발생하는 데 산에서 그대로 흘러내린 빗물과 토사 때문에 통근버스 운행이 어려워지는 게 원인이라고 한다.
북한의 심각한 산림 황폐화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정부 당국에서는 북한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남북간 교류협력에도 부담이 덜한 북한 조림사업을 오랜 기간 검토해 오고 있다. 최근 통일부에서는 남북협력기금을 통한 북한 지원 시 쌀과 비료 등의‘시혜성 지원’에서 산림·환경 등 ‘민생 개발협력 사업’중심으로 대북 지원 체계를 개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를 비롯한 국제기구도 남북관계의 변동성과 관계없이 북한의 환경을 개선하고, 교류협력 인프라를 구축하는 정책수단으로 산림 복원과 산림 황폐화 진행방지와 같은 환경협력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 당국 또한 북한 주민과의 접촉 등 걸림돌만 해결된다면 기타 다른 분야에 비해 환경협력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조림사업 참여는 북한의 자연환경 개선, 북한 주민의 생활 편의 증진과 더불어 우리 경제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국내 한 연구기관은 북한 산림복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권은 약 2,555만 tCO2로, 이를 판매수익으로 환산했을 때 약 1억 4,000만 달러의 경제수익에 상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도 북한에서 획득한 탄소배출권이 우리나라 배출권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지에 대해 법률 검토 중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에서 우리 기업이 북한 조림사업에 참여할 경우 상쇄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조림 등 북한 환경 복원 사업에 국내 자본을 투자하여 탄소배출권을 생산하고, 이를 국내 배출권 거래에 사용하는 남북환경협력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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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정책연구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1986년 환경보호법을 채택한 이후 국토환경보호단속법(1998년), 하천법(2002년), 대동강오염방지법(2005년), 폐기·폐설물취급법(2007년) 등 환경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환경 관련 법들을 지속적으로 제정하고 있다. 이론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기후변화, 대기, 수질, 토양 및 산림 등 환경 각 분야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통해 오랫동안 심각한 환경오염을 겪고 있는 북한의 환경오염 개선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상호 불신이 해소된다면 남북환경협력은 그 어떤 교류사업 보다 효과적인 남북 신뢰구축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조림 사업 외에 남북이 상호 영향을 받는 임진강 수질관리, 중국 발 황사의 공동연구 등이 남북환경협력이 우선적으로 가능한 분야로 꼽힌다. 남과 북의 직접적인 협력이 어렵다면 비영리 민간단체, 국제기구 등 북한이 선호하는 국제협력 방식을 통한 우리의 간접적 참여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환경에는 정치적 상황, 사회적 이데올로기, 한반도가 짊어지고 있는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에 대한 고려도 필요치 않다. 남북환경협력은 단기적으로는 공동의 이익 추구를 통해 공감과 이해를 넓히는 데, 장기적으로는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해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한 통일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를 돌아보고 남긴 고은 시인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통일은 결국 발의 통일이다. 철조망 오가는 발소리가 많아질수록 통일은 온다”. 개성공단에서 시작된 남북환경협력의 발걸음이 대동강, 압록강과 저 멀리 묘향산, 백두산까지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이시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1956년 생
- 영남대학교 토목공학과 학사
- 맨해튼대학대학원 환경공학과 석사
-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대학원 환경공학과 박사
- 대한환경공학회 이사
- 대한환경공학회 부회장
- 경기대학교 공과대학 환경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 現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