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쌘돌이 AI 번역, 인간의 섬세함에 밀렸다

날쌘돌이 AI 번역, 인간의 섬세함에 밀렸다

김지민 기자
2017.02.21 17:28

'바둑' 이어 '번역'서 펼친 인간 vs 인공지능 대결…30점 만점에 인간 '25점'으로 기계번역 압도

/사진=홍봉진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인간 고유의 바둑세계를 점령한 인공지능(AI). 그러나 인간의 언어 해석 능력까지 따라잡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국내 처음 시도된 인간 대 인공지능간 번역 대결은 싱겁게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

2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광개토관에서 국제통번역협회(ITT)와 세종대·세종사이버대학교 공동주최로 열린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 대결에서 인간 번역사들이 기계번역을 크게 앞질렀다. 한국외대통번역대학원 출신의 현업 베테랑 번역가 4명이 인공신경망 기계번역엔진(NMT)을 탑재한 구글·네이버(파파고)·시스트란 등 번역 서비스 3개와 겨뤘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곽중철 한국외대 교수는 “번역가 4명이 받은 평균점수는 25점 내외였고 번역기 3대 중 한 대는 15점, 나머지 두 대는 10점 이하를 받았다”고 밝혔다. 인간 번역사와 번역기의 개별 점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속도에서 앞섰지만 이해도도 아직...=이 날 출전자들에게는 한글과 영어로 된 문학, 비문학 지문 4개가 주어졌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이를 상대 언어로 누가 정확하게 번역하는 지 따지는 승부다. 비문학 부문에서는 일간지에 실린 수필류의 문장(한글)과 영자지 경제 기사(영문)가, 문학 부문에서는 근대 문학소설(한글)과 기술에 대한 소회를 적은 글(영문)이 각각 출제됐다. 문장 길이는 영한번역의 경우 330단어 내외, 한영번역의 경우 750자 내외로 구성했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4가지 부문 모두 난이도가 높은 문제로 구성했다. 전문 번역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분으로, 기계에 주어진 시간(30분)보다 길었다. 전문 번역가들이 결과물을 입력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각각의 번역기에 지문을 넣어 번역기를 돌리는 작업은 인간이 대신했다.

심사기준은 △오역·누락 여부 △심층적 의미 부여 △어법 정확성 △어휘선택과 표현의 명료함 △내용의 논리성 △전후 맥락 파악 등 총 6개 부문으로 각각 5점씩 총 30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이 전문 번역사들의 손을 들어준 가장 큰 이유는 ‘텍스트 이해력’의 격차 때문이다. 기계 번역의 경우,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 번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곽중철 교수는 “인공지능 발전이 빠르다지만 아직 인간의 이해능력을 따라오는데 한계가 적지않다”며 “특히 문학 번역에 있어서 문법이나 문장이 맞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곽 교수는 “기계는 자가교정을 할 수 없지만 인간은 초안을 검토하며 완벽을 기한다는 점에서 당분간은 인공지능이 결코 인간을 능가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번역 생태계 판도 흔들 ‘게임체인저’=그럼에도 이날 기계가 보여준 능력은 통번역 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승부에서 지긴 했어도 번역에서 요구되는 두 가지 요소인 ‘속도’와 ‘정확성’ 면에서 평균 이상의 실력이 입증됐다. 이날 출전한 3개 번역기에 적용된 인공신경망 번역 기술(NMT)은 인간처럼 문장 전체를 놓고 문맥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또 인간이 해석한 다양한 번역 결과물을 기계 스스로 학습한다. 학습량이 많아질수록 오차율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언어 통번역 영역에서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기계번역 기술은 번역계 생태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벌써부터 기계 번역기로 초벌 번역을 하는 번역가들도 생겨날 정도다. 통번역대학원에서는 NMT 번역을 활용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전문 번역가를 양성하는 방식에서부터 번역가의 업무 방식까지 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강대영 국제통번역협회 국장은 “최근 기계번역의 질이 향상되면서 현업에서 위기의식이 감돌기 시작했다”며 “기계번역 소프트웨어를 능숙히 활용하면서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는 번역 결과물을 내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표현이 필요한 영역, 최종 판단 등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게 될 것이란 점에서 전문 번역가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곽은주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는 “인간은 다양한 번역기 중 주어진 텍스트에 최적화된 번역기를 고르는 와인 소믈리에나 포스트 에디팅(post editing)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석 시스트란 상무는 “번역에 대한 또 다른 가치는 우리가 소화하지 못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가치있는 데이터로 만드는데 있다”며 “인간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좀더 가치 있는 번역 결과물을 만드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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