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 전두환 정권은 모든 언론사에 '5.17 보도통제 지침'을 내린다. 정부의 비상계엄령 선포·확대 조치를 비판하는 보도는 불가하며, 이를 어길 경우 폐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5.18 발발 이후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발포가 이어지는 동안 시외전화가 끊기고 도로망이 탱크로 원천 봉쇄됐다.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광주 시민들이 외롭고 끔찍한 투쟁을 하고 있었지만 정부는 언론의 입을 막았다. 신문의 지면은 기사 대신 하얀 공백, 백지(白紙)로 채워졌고, 알려야 할 사건들은 전파되지 못했다.
30여년이 흘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오직 역사적 진실이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나기를 바랄 뿐이다'며 무려 2100쪽에 달하는 회고록을 3권에 걸쳐 내놨다. 하지만 사실 왜곡 논란으로 출간 5개월 만에 출판 금지 결정을 받으며 책의 30여 곳이 흑지(黑紙)로 대체됐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역사적 평가에 대해 '오해와 편견'이라고 주장하며 회고록을 통해 항변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번엔 되레 그의 입이 막힌 셈이다. 1980년 그가 자행한 무력이 사람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렸다면 이제는 법에 의해 그의 항변이 삭제조치 됐다.
그가 회고록 안에 그려낸 광주민주항쟁의 단상은 그가 책을 통해 드러나길 바란다고 밝힌 '진실'의 의미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책에서 '5.18의 발단부터 종결까지 전 과정에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광주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1980년 5월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전 시위대의 장갑차에 치어 계엄군이 사망했다'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이다' 등의 주장을 폈다. 서문에서 밝힌 '진실'이란 말이 무색하고 민망해진다.
과거 전 전 대통령이 백지(白紙)로 감춰두려 했던 역사적 사실들은 3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규명되고 심판받아 왔다. 당시 백지(白紙)의 공간은 확인된 진실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가 밝혔듯 역사적 진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를 바란다면 회고록이라는 이름의 변명이 아니라 참회록을 내놓는 편이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