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5년 간 건보에 35조 생명수 '덜' 줬다

이창섭 기자
2022.09.09 09:40

[MT리포트]7년뒤 건보재정 붕괴②

[편집자주] 앞으로 7년뒤, 국민건강보험 적립금이 전액 고갈된다. 18년 뒤엔 건보 누적 적자가 국가 한해 예산규모를 넘어선 680조원에 육박한다. 건보는 국가 지원금과 건보료라는 두 개의 날개로 지탱되는데 둘 다 흔들린다. 지원금이 없으면 건보재정은 당장 적자로 돌아서지만 일몰조항 탓에 자칫 내년부터 지원금이 끊긴다. 건보료는 초고령 사회 진입과 함께 들어갈 곳은 한없이 늘지만 더 들어올 곳은 제한적이다. 당장 대수술이 필요한데 '누구나 덜 내고 더 받고 싶은' 속성 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붕괴 신호가 온 건보 재정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해본다.

약 75조4000억원. 2007년 국민건강보험법이 제정된 후 지난해까지, 15년간 정부가 메운 건강보험(건보) 재정 누적 적자 금액이다.

약 35조1000억원. 같은 기간 정부가 건보 재정에 투입해야 했지만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 돈이기도 하다. 15년 동안 정부는 75조원 이상의 건보 재정 적자를 메웠지만, 동시에 35조원 이상의 돈을 '덜' 지원했다.

국가의 건보 재정 지원은 올해 12월 31일부로 종료된다. 매해 수조 원 이상의 건보 재정 적자 발생이 뻔하기에 정부 지원은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애초에 정부 지원금 자체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있다. '20%'라는 지원 기준이 제대로 지켜진 적도 없을뿐더러 이마저도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말라가는 건보 재정을 살리기 위해서 기준을 개편하고 정부 지원 비중을 30%까지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2일 머니투데이가 보건복지부 건보 재정 현황을 분석한 결과와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정부의 건보 재정 국고 지원금 규모는 약 94조5000억원이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2007년부터 국고와 '담배부담금'으로도 불리는 건강증진기금으로 해당 연도 건보 예상 수입액 20%의 금액을 지원해왔다.

정부 지원금은 건보 재정 적자를 메우는 생명수다. 건보 재정은 정부 지원금을 제외하면 매년 수조 원에서 많게는 10조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15년간 정부가 보전한 건보 적자 누적액은 약 75조4000억원이다. 김경자 의약품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계산에 따르면, 정부 지원금 미지급 시 매년 건강보험료를 17% 이상 인상해야 적자를 면할 수 있다.

매년 수조 원 이상의 건보 재정 적자를 메웠던 정부 지원금 제도는 올해 12월 31일부로 끝난다. 2007년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부 지원금 규정이 5년간 한시적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연장을 거듭하다가 올해 기한 만료로 종료되는 것이다.

백형곤 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은 "국고 지원에 대한 일몰 조항을 연장하지 않으면 굉장히 큰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건강보험 근간마저도 흔들릴 수 있다"며 "건강보험 제도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금이 반드시 연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건보 재정 적자 사태 발생이 자명한 만큼 일몰 규정을 삭제하고 정부 지원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21대 국회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관련 법안만 해도 5개나 된다.

정부 지원이 계속돼도 건보 재정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18~2020년 건보 재정 수지는 정부 지원금을 받았음에도 3년 연속 적자였다. 특히 2019년 당기 수지는 2조824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 지원금을 제외하면 적자 금액은 10조6046억원으로 불어난다. 지난해 당기 수지는 2조8229억원 흑자였다. 코로나19(COVID-19) 여파로 국민의 의료 이용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진정되면 건보 재정은 다시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최근 초음파·MRI 등 보장성 강화에 따른 재정 손실은 크지만 수입 확대 방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오는 2026년 보험료율이 법적 상한인 8%에 도달하고 2029년 재정 적립금이 완전히 소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2060년까지 누적 적자 예상 금액은 5765조원이다.

건보 재정 안정성을 위해 국고 지원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정부가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건보 재정에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예상 수입액'과 '상당하는'처럼 모호한 표현으로 매해 정부의 과소 지원이 반복됐다.

지난해 보험료 총수익의 20%는 약 13조8000억원이지만 정부 지원금은 약 9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 예상액과 실제 수입액 괴리가 4조2000억원이다. 이렇게 15년 동안 정부의 과소 추계로 지원되지 못한 금액이 약 35조1000억원에 달한다.

국가의 재정 지원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 건보 재정에서 국고 지원금 비중은 약 11~14%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험 제도를 택한 프랑스, 대만, 일본은 이보다 국고 지원 비중이 훨씬 높다. 2020년 기준, 일본의 건보 재정 총수입 23.1%가 국고 지원금이다. 프랑스는 이 비중이 62.4%에 달한다. 대만도 보험료 수입의 21.7%를 국가가 지원한다.

백 정책기획실장은 "무상 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제안한 우리나라 국고 지원금 비중은 30%다"며 "국고 지원금 비중이 30%라면 한 해 건보 재정이 10조원 정도 남는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의료 보장성을 더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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