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이 끝났다. 12.3 계엄 선포에서 시작된 혼돈과 혼란은 일단락됐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엇갈린 판결은 없었다. 압도적 정리로 갈등의 씨앗조차 없앴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선고 판결문의 결론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1조1항으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와 의미를 판결문에 담았다.
어떤 권한의 행사도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헌법의 정신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과 헌법, 상식의 승리다.
다만 환호하기엔 대한민국의 현실이 위중하다. 불확실성이 사라졌다지만 착시다. 현실을 진단하면 불확실한 것이 확실해졌다. '불확실성의 확실성'이다.
뿌연 안개가 걷혔을 뿐이다. 우리 눈앞엔 위기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갑자기 찾아온 위기는 아니다. 위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헤매는 시간 동안 위기는 오히려 심화됐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위기는 무섭다. 가혹하다. 경제는 무너진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자비한 관세 폭탄은 충격, 그 이상이다. 설명조차 제대로 안 해주니 속절없이 당한다. 수출 마이너스 성장, 성장률 하락 등은 예정된 수순이다.
한국경제의 주역인 대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으며 선물까지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의 청구서는 이제 시작이다. 환율, 방위비 등 혈맹의 요구는 끝이 없다.
내수는 이미 바닥이다. 경기 침체, 고용 위축은 심각하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의 연체율은 올라가고 폐업은 늘어난다. 외교·안보에선 고차방정식이 잔뜩 쌓여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을 비롯 각자도생의 글로벌 흐름에서 뒤처져 있다.
국회, 정치권은 분열이다. 힘을 합치기보다 철저히 멀어지려는 노력에 힘을 쏟는다. 서로를 향한 공격으로 위기를 외면한다.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는 흔들린다.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대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2막은 이런 위기와 대면하는 순간이다. 솔직히 진단해보자.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카드, 능력, 사람, 시간, 돈이 있는가. 주어진 시간은 약 60일이다.
탄핵 후 대통령 선거까지 기간인데 '선거'로만 보낼 여유가 없다. 유불리로 사안을 판단하고 따지는 2막을 만들다보면 시간은 삭제된다. 새 정부는 빈손으로 3막을 열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의 이면에는 정치가 경제를 압도했던 대선이 자리한다.
아픈 경험을 되풀이하지 말자. 통상·민생 등은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문제가 아니다. 위기 때는 힘을 합치고 실리적 해법을 찾는 게 기본이다.
"소수 의견 존중" "정부와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 "국회는 배제대상이 아닌 협치의 대상".
헌법재판소가 안개를 없애면서 여야 모두에게 정치를 당부한 것은 울림을 준다. 다름을 공존하게 하는 정치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근본적 개혁은 이상이다. 당장의 60일간, 소박한 전진이면 충분하다. 갈라진 사회에서 이마저도 어렵기에 작은 통합의 실천은 위기 극복의 출발점이 된다. 하나씩 돌을 쌓는 마음으로 최소 강령, 최소 합의의 길을 걷자.
발등의 불인 통상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기구, 민생 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최소한으로 2막을 만들자. 쉬운 것부터 풀어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회복이지만 회복에 앞서 우린 최소한의 '함께'를 이뤄야 한다. 이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4일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파면 선고에 따라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4개월간 우리 경제를 짓눌러온 경제 불확실성은 일부 걷혔다. 헌재 선고 전후 외환시장이 안정세를 보인 것도 탄핵 관련 불확실성 해소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원/달러 환율은 헌재 선고 전부터 급락하더니 4일 주간 거래 종가 1434.1원을 기록했다. 전날 주간 거래 종가(1467원) 대비 32.9원 급락했다.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치 리스크가 원/달러 환율을 30원 가량 끌어올렸다'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언급이 현실로 증명된 셈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지난 4개월 동안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나쁜 영향이 우리나라 경제에 반영이 됐기 때문에 (탄핵 선고) 결과에 승복하고 나간다면 불확실성이 제거된다는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다시 기지개를 켤 상황은 아니다. 당장 예상보다 더 센 미국의 상호관세 청구서가 날아든 상태다. 이른바 '최악국가'에 포함된 한국이 받아든 관세 고지서는 25%다.
미국은 중국과 함께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 1·2위를 오르내리는 나라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1277억9000만달러로 7년 연속 최대치를 경신했다. 전년 대비 수출액이 10.5% 증가하는 등 증가율도 가파르다.
하지만 상호관세 부과로 대미 수출에 당장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은 500억 달러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경제성장률 하방 압력은 커졌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관세전쟁이 심화하는 비관적 시나리오 아래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이 1.4%로 기존 전망보다 0.1%p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정부가 곧 발표할 '환율보고서'도 골칫거리다. 1400원대가 뉴노멀인 된 환율 탓에 달러를 순매도하고 있는 외환당국 행보를 고려하면 환율조장국(심층분석국) 지정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 '미국 유일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미 무역흑자국이면서 정치 상황이 불안정한 한국을 자의적으로 환율조작국에 지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율조작국에 지정된 나라는 반기별로 환율보고서 제출을 요구받고 대미 무역흑자 폭도 줄여야 한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제약이 발생한다. 한국처럼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는 수출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환율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다. 가령 미국이 상호관세를 부과할 때 환율을 절하시켜 관세 인상 효과를 무력화, 수출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을 쓸 수 없다는 의미다.
성장의 또 다른 한축인 내수 상황도 좋지 않다. 지역 내 고용과 내수를 끌어 올리는 주요한 역할을 해왔던 건설투자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심리 위축에 따른 소비 부진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대선 과정에서 진영간 갈등이 심화, 심리 위축이 계속되면 내수 침체 골이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산불 피해 대응과 함께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도 새정부 출범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권이 민생경제를 위해 정쟁을 멈추고 경제 회복에 뜻을 모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강 교수는 "(탄핵 선고 이후)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난다든가 해서 사회적 혼란이 생기고 국론 분열이 심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시간이 지연될수록 경기 회복 불씨를 살리는 데 들어가는 초기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조기 대선을 치르더라도 추경은 여야가 합의를 해 편성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상황 속에서 우리 경제를 견인하던 수출은 미국의 관세정책에 직격탄을 맞았고 정치 리더십 공백으로 한국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대한 빨리 탄핵 정국의 혼란을 마무리하고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신속한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으로 내수 경기를 회복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관세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마약이나 이민 등 경제 이외 다른 문제의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는 만큼 우리나라에도 단순한 관세 대응을 넘어 방위비 부담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여야가 대승적으로 원칙을 세워 권한대행의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며 "관세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면서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실타래를 풀기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핵 인용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상호관세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관련 TF(태스크포스) 회의를 할 때 민간 기업을 불러 애로사항과 요구를 듣고, 구체적인 통상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내수 경기 회복을 위해 빠른 추경 집행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금리인하 여력이 많지 않은 통화정책의 한계를 고려할 때 경기 부양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동반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여야 간 대립으로 지난 1월에 집행됐어야 할 추경이 3개월째 지연되고 있다"며 "수출보다 풀기 쉬운 내수 회복을 위해 10조원이든, 20조원이든, 30조원이든 추경을 빨리 집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관세정책이 더해지면서 올해 성장률은 1%까지 내려갈 가능성도 나온다"고 했다.
강 교수는 "경기 부양을 위해 추경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여야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규모와 용처가 합의되지 않아 문제"라며 "최소 10조원이라도 실기하지 않고 조기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더 지연될수록 경기 회복 불씨를 살리는 비용이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기 대선으로 출범할 차기 정부도 경기 회복과 산업구조 재편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적극적인 재정 확장 정책과 미국 이외 다른 국가들과의 교역·투자 확대 등으로 성장 모멘텀을 살려야 한다"며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중국과도 경쟁적인 관계로 들어선 분야가 있는데, 기존 중간재 수출 중심이 아니라 최종 소비재 쪽으로도 수출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R&D(연구·개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전 정부는 산업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서 한계에 직면했다"며 "산업 구조를 바꾸고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 로봇 등 기술 중심의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R&D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