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반영해 올해 실질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제시했다. 정부 전망대로라면 올해 실질성장률은 2021년 이후 5년 만에 3%대로 올라선다.
연간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출 가격 등을 반영한 경상성장률은 30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정부는 잠재성장률과 수출, 국민소득 등의 지표에서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재정경제부는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정부가 매년 2차례 발표하는 경제성장전략에는 경제정책의 방향과 경제전망 등이 담긴다.
이번 경제성장전략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경제전망이다. 재경부는 올해 실질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6개월 전 전망보다 1.0%포인트 올라간 수치다.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전망한 2.6%보다도 훨씬 높다.
이형일 재경부 1차관은 "우리 경제는 중동 전쟁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전례 없는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양호한 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재경부는 올해 수출 증가율을 40%로 내다봤다. 지난해 수출은 7094억달러다. 올해 수출이 산술적으로 9932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1조 달러 돌파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수출 가격 등을 반영한 올해 경상성장률은 12.3%로 전망했다. 1996년(12.3%) 이후 3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4만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추정했다.
재경부는 개선된 거시지표를 반영해 잠재성장률 3%, 수출 4강, 국민소득 5만달러라는 '3·4·5 비전'을 제시했다.
모든 생산 요소를 투입했을 때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은 현재 1%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전 세계 7위권 수준이었던 수출은 올해 1~4월에 5위를 기록했다.
정부는 잠재성장률을 회복하기 위해 반도체,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등 메가 프로젝트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하던 한국형 국부펀드는 한국투자공사(KIC)에 전략투자계정을 신설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동 전쟁 등으로 취약성이 드러나 공급망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국내생산세액공제를 도입한다. 구조개혁에도 무게를 두고 기초연금 하후상박 구조 도입,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공공기관 기능 개혁 등을 추진한다.
재정경제부가 지난 1월 내놓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0%였다. 당시에도 불확실성은 있었지만 정부는 소비 증가와 건설부진 완화 등 내수 중심 회복세에 따라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란 평가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망 차질 등으로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줄줄이 하향되고 있는 것과 반대로 우리 경제는 사실상 나홀로 질주 중이다.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자리한다.
재정경제부는 1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실질 GDP가 전년 대비 3.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월 전망(2.0%)보다 1%포인트(p) 높여 잡았다. 내년 성장률은 2.2%를 기록할 것을 내다봤다. 올해 고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이다.
경상성장률(명목성장률) 전망치는 더 극적이다. 지난 1월(4.9%)보다 7.4%p 상향 조정한 12.3%를 제시했다.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3.0%)에 GDP 디플레이터(9.0%)를 곱해(1.03%×1.09%) 산출한 수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우리 경제는 1% 중후반대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 달성조차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우리나라의 실질 GDP 성장률은 1.1%에 그쳤다.
정부 전망대로 올해 성장률이 3.0%를 기록하면 코로나19(COVID-19) 영향으로 역성장을 한 전년도(2020년, -0.7%)의 기저효과로 4.7% 성장을 달성한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정부 전망치는 주요 기관들의 전망치보다 높은 수준이다. IMF(국제통화기금)와 ADB(아시아개발은행)는 최근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이에 앞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한국은행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높여 잡았다.
성장률 전망치 상향 조정의 배경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자리한다. 반도체 초호황은 수출과 투자·소비 성장을 다 끌어올리며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실제 올해 상반기 반도체 수출액은 1924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2.6% 급증했다. 기존 연간 최대 실적인 지난해 기록(1734억달러)을 상반기에 이미 넘어섰다. 특히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448억2000만달러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월 400억달러 수출 기록을 세웠다.
이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전체 수출액은 4967억달러로 1년 전보다 48.4% 증가했다. 상반기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이다. 지난달에는 사상 첫 월수출 1000억달러 고지도 넘었다.
그 결과, 지난 1분기 우리나라의 실질 GDP는 전기 대비 1.8% 깜짝 성장했다. 같은 기간 명목 GDP 성장률은 10.5%로, 1976년 1분기(13.0%) 이후 50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재경부는 올해 수출액이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년 대비 40% 급증한 9930억6620만달러 수출액을 달성할 것이란 기대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9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한국 경제의 호조는 중동전쟁 등 영향으로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는 것과 대비된다. IMF는 최근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1.9%→2.6%)하면서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3.0%로 0.1%p 하향 조정했다. 한국이 포함된 선진국 그룹의 성장률 전망치도 1.7%로 0.1%p 내려 잡았다.
IMF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미국(2.1%) △스페인(2.1%) △호주(1.9%) △일본(1.1%) △영국(1.0%) 등 이번에 수정 전망한 주요 선진국 그룹 가운데 가장 높다.
이형일 재경부 1차관은 "다른 기관들은 3·4월 데이터로 추계를 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부는 가장 최신 데이터까지 보고 판단했다"며 "가장 큰 변화는 결국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수출 증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 중동전쟁 긴장이 다소 완화됐고, 반도체 호황에 따라 조기에 설비투자를 하려는 기업들의 분위기도 일부 반영했다"며 "여기에 정책의지도 담겨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최근의 성장 호조세가 기조적인 성장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핵심은 1% 중후반대까지 내려온 잠재성장률 반등을 이뤄내는 것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시기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이재명정부 임기가 끝나는 2030년까지 잠재성장률 3%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잠재성장률 반등의 양날개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초격차 성장동력 육성'과 '지방 주도 성장'이다. 이를 위해 3대 메가프로젝트와 초혁신경제 선도 프로젝트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투자형 R&D 도입, 국부펀드·국민성장펀드 등을 통해 민관자금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 차관은 "반도체 호황을 기회 삼아 압도적 투자를 하고, 피지컬 AI(인공지능) 등으로 사회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향상되면 총요소 생산성이 올라갈 것"이라며 "(잠재성장률 3% 달성이) 도전적이지만 해 볼 수 있단 자신감을 갖고 이재명정부 내에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높여 잡았지만, 반도체의 '성장 독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이외 업종으로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퍼지지 않으면서다. 특히 IT와 비IT, 지역간, 세대간 격차 등 전 부문에 걸친 양극화는 'K양극화'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14일 재정경제부는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경상 GDP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4.9%에서 12.3%로, 실질 GDP 성장률은 2.0%에서 3.0%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성장이 반도체에 집중되면서 이외 업종의 부진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산업·계층별로 경기 성장과 부진의 방향이 상반되면서 격차가 알파벳 'K' 모양으로 벌어지는 K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전산업생산지수는 생산량 조정으로 반도체 생산이 10% 줄자 마이너스(-0.3%)를 기록했다. 지역간 격차는 '반도체 공장' 보유 여부에 따라 갈렸다. 올해 1분기 호남권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보합(0%)으로 증가율이 가장 낮았던 반면 수도권(5.2%)과 충청권(4.2%)은 성장세를 보였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권역별 성장을 가른 것이다.
고용시장도 반도체발(發) 경제 성장의 온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5월 취업자 수는 2912만명으로 전년 대비 4만명 감소했다. 2024년 12월(-5만2000명) 이후 17개월 만에 감소 전환이다. 특히 청년층 고용률은 43.8%로 전년 동월 대비 2.4%p 하락하면서 25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무엇보다 AI(인공지능) 전환으로 인한 산업 구조 변화로 기업의 고용이 줄면서 고용 여력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당장 내년에도 이같은 성장을 유지할지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도 내년 경상·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4.6%, 2.2%로 제시했다. 고성장에 따른 기저효과 영향이 크지만 올해만큼의 성장세가 유지되긴 어렵단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끝나면 부진한 산업·계층의 파열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양극화에 대한 경고등은 지속돼 왔다. 올해 초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는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IT 부문을 제외한 경제성장률이 1.4%에 불과하다고 전망했다. 특히 부문간 격차로 체감 경기와의 괴리를 지적하며 지속가능한 회복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대목이다.
이번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도 한국이 마주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경계감이 드러난다. 경제성장전략에 고용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고용안정 계획과 일자리, 자산, 주거 등 청년 정책 등 전방위적인 대책을 담은 배경이다.
반도체 초과세수로 조성할 미래대응기금도 마찬가지다. AI(인공지능) 대전환기에 성장이 한쪽으로 치우쳐지면서 인위적인 '낙수효과'를 만들겠단 목적이다. 이는 청년세대, 성장동력, 지방, 인재 등에 집중 투자될 전망이다.
이형일 재경부 1차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하반기부터 구조혁신 이슈를 주로 다루는 구조혁신장관회의로 본격 가동해 잠재성장률 반등,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한 정책 추진 상황을 점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