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아스가르 헤자지, 이슬람혁명 후 호메이니 정권부터 30년간 정부요직

이스라엘이 지난 2월28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관저 폭격 당시 사살했다고 주장한 이란 정권 주요 인물이 생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란 막후 실력자로 불려 온 알리 아스가르 헤자지 최고지도자 비서실장이다. 그가 지난 9일(현지시간) 이란 마슈하드에서 진행된 하메네이 장례식 현장에서 포착됐다.
13일(현지시간) 이란 인터내셔널, 이란와이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헤자지 실장은 넉 달 만에 마슈하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란 정권 고위 관계자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덕담을 주고 받았다.
헤자지 실장은 지난 30년 동안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최측근 활동하면서 이란의 입법, 사법, 행정 전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와이어는 "헤자지 실장은 이란 최고 요인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이란의 정보기관을 조율하고 최고위급 결정을 실질 정책으로 전환하는 임무를 맡았다"며 "막대한 영향력에도 일반 대중에게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경호원 없이 거리를 활보할 정도였다"고 했다.
2월 당시 이스라엘의 '사살' 주장에도 미 국무부는 헤자지 실장 신병 확보로 이어질 만한 결정적 제보를 하면 1000만달러(148억원)의 포상금을 제공하겠다고 지난 3월 발표했다. 이에 헤자지 실장이 생존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었다. 헤자지 실장 생존이 확인된 만큼 부친 장례식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최고지도자 선출과 현 정권 유지에 깊숙이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헤자지 실장은 권력의 부계승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뜻을 따라 당초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선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번 선출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고 모즈타바 현 정권에서도 권력의 중심에 선 것은 분명하다고 이란와이어는 주장했다.

헤자지 실장에겐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측근이었던 자신의 삼촌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권력 중심으로 진출했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때 이슬람공화당에 입당한 그는 팔레비 왕조가 이란에 들인 세속적 요소를 제거하는 정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루홀라 호메니이 초대 최고지도자의 지시로 설립된 준사법기관 혁명검찰청의 정치 부총장을 거쳐 이란 정보부(MOI) 설립을 주도했다.
1989년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가 정권을 잡자 헤자지 실장은 최고지도자 집무실 베이트로 발령받았다. 이곳에서 모하마드 모하마디 골파예가니와 함께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입법·사법·행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란 최고위층의 '게이트키퍼'인 셈이다. 이란 와이어는 "헤자지는 이란 공포정치를 구축한 인물"이라며 1994년 아르헨티나 유대인 공동체 테러 사건과 관련한 지시를 내린 혐의, 2009년 이란 민주화 운동인 녹색운동 유혈진압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란와이어는 이란이 2015년 오바마 행정부와 핵 협정(JCPOA)을 체결할 때도 헤자지 실장이 의사결정에 깊이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헤자지 실장이 알리 라리자니 당시 이란 국회의장, 알리 샴카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과 심야 회담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헤자지 실장의 참석은 베이트의 명시적 지시로 받아들여졌다"며 "이 '그림자 속 인물'의 개입으로 JCPOA 합의안은 예상과 달리 수정안 심의조차 거치지 않고 20분 만에 의회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이란 와이어는 "미 국무부가 헤자지 실장 관련 제보에 1000만달러 포상금을 걸었다는 것은 그를 매우 위험한 인물로 간주한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2월28일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와 함께 지도부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헤자지 실장은 이슬람 성직자 사회와 이란 혁명수비대, 국가 조직 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로 남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