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외국인과 마주 앉아 대화할 일이 있을 줄, 석노기 영주대장간 대표(70)는 꿈에도 몰랐다. 3년 전 석 대표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로부터 "호주 사람이 호미를 사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석 대표 호미가 미국 쇼핑몰 아마존에서 한창 인기를 끄는 시점이었다. 호주인은 멜버른에서 호미 장사를 시작했다. 석 대표 호미가 아마존에서 팔리는 것만큼 잘 팔리지 않았다.
화상회의할 때 호주인은 판매 중인 호미 하나를 들어 보였다. '중국산이구나' 석 대표는 딱 보고 알았다. 중국은 호미를 가마, 틀에 넣고 찍어낸다. 겉만 보면 수작업으로 두들겨 만드는 것보다 매끈하지만 내구성이 떨어져 쉽게 망가진다. 호주인은 석 대표의 호미를 1200여개 샀다. 이어 3년 동안 2번 더 주문했고 이달 초 세번째 추가 주문을 했다.
이탈리아, 인도에서도 석 대표 호미를 사 간다. 미국도 당초 구매처 한 곳이 석 대표 호미를 사 아마존에 입점했는데 지금은 구매처가 세곳으로 늘었다. 지난달에는 미국 교포가 경상북도 영주 대장간으로 찾아와 사업을 하겠다며 호미 1000여개를 사 갔다. 이달 기준 석 대표 호미는 10여개 국가로 수출된다. 수출국은 꾸준히 늘고 있다.
석 대표는 1968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매형 대장간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3남 1녀 중 막내였다. 큰형은 열다섯살 위라 가정을 뒷바라지하기 바빴고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 생활력이 떨어졌다. 학비를 낼 여력이 없었다. 당시 중학교는 의무 교육이 아니었다.
석 대표는 일을 빨리 배웠다. 대장장이 기술은 10년이 넘어도 배우기 벅차다고 한다. 석 대표는 8~9년 만에 기술을 다 배웠다고 자평한다. 17세에 처음으로 혼자 낫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었다. 석 대표는 쇠가 불에 달궈지는 색을 보고 적절히 달궈졌는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다. 대장간에 흔한 온도계가 석 대표 대장간에는 없다.
아마존 진출은 우연이었다. 10여년 전 국내 온라인 쇼핑몰들이 한창 크고 있었다. 석 대표도 '뒤처지면 안 되겠구나' 싶어 같은 지역에서 쇼핑몰 입점 사업을 하던 지인을 통해 국내 쇼핑몰에 호미를 입점시켰다. 그런데 바다 건너 미국에서 자꾸 호미 주문이 들어왔다. 당시 호미 하나 가격은 3000원, 미국에 보낼 때 운임료는 1만8000원이었다. 석 대표와 지인은 '교포가 호미를 사겠거니' 했다.
몇해 있다가 모 언론사 기자가 석 대표에게 전화해 "아마존에서 성공 축하드린다"고 했다. 석 대표는 그 때까지 아마존이 뭔지 몰랐다. 석 대표는 "테레비에서 보면 아마존 밀림 강, 지구의 허파라던데 강에서 호미를 쓰나 싶었다"고 했다.
석 대표 호미는 아마존에서 히트였다. 2019년 한해 아마존 원예 부문 상품 '톱10'에 들었다. 구매자 70%가 별점 5점 만점에 5점을 줬다.
인기는 여전하다. 28일 오후 1시쯤 아마존에 석 대표 호미가 8개 남았는데 오후 4시쯤에는 3개 남았다고 뜬다. '잘 샀다'는 댓글도 꾸준하다. 지난 14일 "This is my new favoirte tool(내 새로운 최애 농기구다)", 지난 12일 "바닥 좁은 틈에 난 잡초를 뿌리까지 뽑는다" 등 댓글들이 달렸다. 지난해 12월에는 "Absolute best hand hoe for me(최고의 괭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전까지 미국은 잡초를 뽑는 데 모종삽, 갈퀴를 썼다. 모종삽은 손잡이와 날이 일렬이다. 잡초를 뽑으려면 날을 땅에 넣고 앞으로 밀어야 하는데 적당한 힘을 주기 쉽지 않다. 갈퀴는 갈퀴 사이가 비어 있어 잡초 뿌리를 캐내는 데 힘이 더 든다.
호미는 손잡이와 날이 기역(ㄱ)자이고 날도 넓적하다. 날을 땅에 넣고 몸 쪽으로 끌어당겨 쓰기 때문에 힘을 주기 쉽다. 날이 넓적해 뿌리도 금방 뽑힌다. 유튜브에는 호미와 갈퀴를 한번씩 쓰고 뭐가 더 효과적인가 비교하는 영상들이 있다. 호미가 '게임 체인저'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호미는 이날 기준 아마존에서 22불, 한화로 약 3만원에 팔린다. 한국에서는 7000~8000원에 팔리는데 물류비 차이겠지만 판매가만 보면 싼 편은 아니다. 저가 중국산 호미가 아마존에 많이 입점했다. 하지만 석 대표 호미는 비싸도 꾸준히 팔린다. 석 대표는 "기분이 좋다"며 "인정받는다는 뜻이니까"라고 했다.
석 대표는 지금도 호미를 직접 만든다. 이날도 화덕에 불을 지피고, 쇠를 달구고 함마(망치)로 쇠를 두들겼다. 석 대표는 '소비자의 신뢰'를 최우선 순위로 둔다고 한다. 석 대표는 "나도 힘들게 먹고 살았고 그 사람도 힘들게 번 돈인데 대충 장사하면 오래 못 간다"고 했다. 석 대표는 이 원칙이 아마존, 외국 시장에서 호미가 꾸준히 팔리는 비결이라 말한다.
젊을 때 석 대표는 하루 9~10시간 일하고, 호미를 60~70개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하루 약 5시간 일한다. 지난해 겨울에는 어깨 인대를 다쳐 수술을 받았다.
앞으로 목표를 묻자 석 대표는 "영주 대장간을 이어받을 후계자"라 했다. 그는 "아직 힘이 있어 망치를 들 수 있을 때까지는 (대장장이 일을) 해야지"라면서도 "요즘은 대장간이 3D 업종이라며 안 하겠다는 사람이 많겠는데 뜻있고 나와 함께 일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