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직접 한다?...잘 다니던 '김앤장' 때려치운 변호사, 창업한 사연

최태범 기자
2026.07.26 11:00

[스타트UP스토리]강상원 래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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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원 래티스 대표 /사진=최태범 기자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박차고 나와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인물이 있어 주목된다. CLM(계약생애주기관리) 솔루션 '프릭스(Prix)'를 시작으로 기업의 AX(인공지능 전환)를 돕는 SI(시스템 통합) 사업을 전개하는 래티스의 강상원 대표다.

사명 래티스는 '격자'라는 뜻이 담겨있다. 강상원 대표가 존경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 찰리 멍거가 강조한 '격자형 사고 모형(Latticework of Mental Models)'에서 따왔다. 강 대표는 "현명하게 사고하려면 여러 틀을 격자처럼 엮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 시절 매일 계약 관리의 비효율과 씨름해야 했다"며 "수많은 자문 계약과 소송 수임 계약을 체결했는데 고객마다 대금 청구 주기가 다르고 방식도 달라 관리에 애를 많이 먹었다"고 회고했다.

해결책을 찾다 못해 직접 엑셀을 열어 관리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프릭스의 시작이었다. 강 대표는 "국내 기업 대부분은 여전히 엑셀로 계약 대장을 만들고, 실물은 캐비닛에 보관한다"며 "이는 기업의 핵심 자산인 계약 현황 파악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계약 생애주기 관리…한국에 없던 CLM 시장 개척
/그래픽=윤선정

2023년 초 창업 시점에는 이미 전자서명 시장에 여러 강자들이 있었다. 강 대표는 "미국에서는 전자서명과 CLM이 완전히 구분되는 서비스"라며 "그런데 한국에는 CLM이 아직 뚜렷하게 없었다. 그 빈 공간에 도전해 보고자 했다"고 전했다.

기존 전자계약 솔루션들이 '도장을 찍는' 행위를 디지털 전환했다면 프릭스는 계약이 탄생하는 과정에 필요한 내부 검토와 승인, 외부와의 협상, 체결 이후의 만기·갱신 관리, 세금계산서 발행, 주요 일정 알림, 리스크 분석까지 계약의 전 주기를 한 시스템 안에서 다룬다.

그는 "이런 시스템이 없으면 계약서가 이메일, 메신저, 슬랙에 버전별로 떠돌게 된다"며 "어떤 게 최종본인지 알기 어렵고 체결된 파일은 유실되기 일쑤"라며 "결국 엑셀과 구글 드라이브를 조합해 쓰는데 둘 다 폴더에 들어가면 모두에게 보이고 권한 관리가 안 된다"고 했다.

이러한 '파편화된 관리'를 해소하는 것이 프릭스다. 도입 주체는 대부분 기업 법무팀이다. 강 대표는 "법무팀이 가장 싫어하는 게 검토하지도 않은 계약서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상황"이라며 "모든 계약서가 한곳에 다 있어야 한다는 내부통제 관점에서 도입한다"고 말했다.

프릭스를 통해 관리된 계약 건수는 10만건을 돌파했다. 140개 이상의 유료 고객사를 확보했으며 연내 300개사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현재 KB신용정보, 주식회사 숲(SOOP), 큐로드, 디오디 등 상장사 및 중견기업들이 주요 고객이다.

흩어진 문서를 데이터로…계약 10만건·고객 140곳으로 증명

AI도 적극 활용한다. 강 대표는 "계약서를 만들거나 검토하는 건 챗GPT에 올려도 잘 해준다"며 "중요한 건 고객의 업무 시스템 안에 AI를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가 처리하는 업무를 오차를 감수할 수 있는 영역과 결코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나눈다"며 "전체 내용 요약 등은 AI가 보조하지만 금액이나 기간 등 리스크와 직결된 정보는 사용자가 AI의 추천값을 최종 승인해야만 데이터로 입력된다"고 부연했다.

래티스의 핵심 역량은 PC 속 수많은 비정형 데이터(문서)를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데이터화하는 능력이다. 단순히 텍스트를 추출하는 수준을 넘어 복잡한 계약서에서 '납기일'이나 '단가 변동 조건' 같은 핵심 정보를 찾아내고 이를 특정 필드에 오차 없이 입력한다.

이를 '야드그리드(YardGrid)'라는 비정형 데이터 특화 문서관리 솔루션으로 구축해 프릭스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야드그리드는 한글, 워드, 도면 등 다양한 형태의 문서를 시스템 내에서 통합 관리하고, 결재 및 업무 프로세스와 연동해 문서 워크플로우를 자동화한다.

강 대표는 "기존 솔루션들이 단일 계약서 단위 관리에 머물 때 우리는 건설·부동산 프로젝트처럼 수많은 계약이 얽히는 상황을 고려해 '프로젝트 단위 통합 관리'를 구현했다"며 "외부 협업툴 및 내부 시스템과 연동돼 전사적인 계약 거버넌스 구축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맞춤형 SI로 영역 확장…고객과 함께 호흡

래티스는 프릭스의 실적과 야드그리드의 강점을 바탕으로 기업들의 AX를 통해 업무 생산성을 높여주는 SI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대표적인 고객사는 한화오션이 있다.

강 대표는 "프릭스가 문서를 다량으로 처리하고 여러 명이 권한과 접근 통제를 하며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솔루션이라면, 야드그리드는 조선·제조·방산 분야에 특화해 대기업의 복잡한 워크플로우에 맞는 맞춤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 한 척을 만드는 데 쏟아지는 도면과 기술 문서는 상상을 초월한다"며 "야드그리드는 조선 현장에서 쏟아지는 방대한 설계 도면과 기술 문서를 격자처럼 체계적으로 구조화하고 자동 인덱싱한다"고 했다.

프릭스를 사용하던 고객이 커스터마이징이나 온프레미스(내부 설치형) 구축을 요청하면, 이를 야드그리드로 실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 대표는 "고객사 IT 담당자뿐 아니라 현업 담당자와 많이 소통하고 고객사에 장기간 파견을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단순히 비용이 싸다고 솔루션을 선택하지 않는다. 보안, 세부 권한 설정, ERP 연동, AI 친화성을 종합적으로 따진다"며 "고객사와 호흡하며 그들의 워크플로우에 맞춰주는 역량이 앞으로 훨씬 중요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팔란티어 목표, 사회적 비용까지 줄인다"

강 대표가 롤모델로 삼은 곳은 미국의 팔란티어다. 그는 "팔란티어가 하는 일이 결국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전방 배치 엔지니어)로서 현장에 파견돼 고객의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것"이라며 "래티스는 한국의 팔란티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업 내 고유의 암묵지(暗默知, 머리 속에 잠재돼 있는 지식)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성문화해 구조로 뜯어내느냐가 중요하다"며 "고객사에 단순히 솔루션을 개발만 해주는 게 아니라 컨설팅 파트너이자 PM(프로덕트 매니저)으로서 지원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래티스는 해외 시장 개척도 본격화했다. 일본 라쿠텐 심포니의 해양 사이버보안 플랫폼 '라쿠텐 마리타임', 해양 보안기업 사이돔(Cydome)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야드그리드의 글로벌 세일즈를 시작했다.

강 대표의 최종 목표는 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 그는 "미국에서 CLM을 도입하는 큰 이유는 딜 사이클 단축"이라며 "4주 걸리던 영업 사이클을 1~2주로 줄이고 계약 관련 분쟁을 단축하면 사회적 비용 절감은 물론 경제 전반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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