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대 1' 바늘구멍, 경력만 뽑는 세상…AI에도 치이는 청년

박종진 기자, 유선일 기자
2026.10.24 07:15

[청년은 왜 좌절하나]⑥청년에게 닫힌 취업 문

[편집자주] 청년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취업난과 자산 격차, 주거 불안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다면, 한국 청년들은 구직과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저항하고 있다. 분노와 타협, 우울을 반복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짚어봤다.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20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서울시 중장년 일자리박람회 2026에서 참석자들이 취업상담을 받고 있다. 2026.10.20. photo1006@newsis.com /사진=전신

#통상 매년 100명 정도 신입을 뽑던 IT(정보기술) 업계 A사는 올해 신입 채용을 20% 이상 줄였다. 현장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경력 선호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이는 더 강화됐다. AI(인공지능)가 산업 현장을 휩쓸면서 이른바 AX(인공지능 전환)가 청년 채용을 더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흐름에 AI 확산이 겹치면서 청년들의 신입 채용 문은 좁아지고 있다.

삼성을 제외한 주요 그룹의 신입 공채가 사라진 상황에서 기업들은 경력 채용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지난해 상반기 민간 채용 플랫폼에 올라온 공고를 분석한 결과 14만4000여건 중 경력 채용만 원하는 기업이 82%를 차지했다. 순수하게 신입직원만 채용하려는 기업은 2.6%에 불과했다.

올 들어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 짙어지고 있다. 국내 주요 그룹 인사 담당자는 "AX가 고도화될수록 기획력이 있는 사람이 AI를 도구로 써서 업무를 수행하게 되고 이는 당장 신입이 덜 필요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신입 여러 명이 하던 일을 경력자 1명이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러니 실존적 불안감은 커진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올해 7월 말 전국 청년(만 19~34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3.9%는 향후 5년 내에 '현재 또는 희망 직무'가 AI로 대체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AI 활용 능력 격차로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대해서도 '동의한다'는 응답이 53.6%로 과반을 넘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부담은 늘어만 간다. 이달 한경협이 여론조사업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현재 구직 활동 중인 전국 청년 1000명(만 19~34세)을 대상으로 실시한 '구직 청년 취업 준비 비용 조사'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월평균 취업 준비 비용은 약 58만 원으로 집계됐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대체로 비용 부담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3년 이상 취업을 준비한 청년의 월평균 준비 비용은 약 80만원에 달해 6개월 미만(56만 원)이나 6개월~1년 미만(52만 원) 준비 집단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취업 준비 기간이 3년 이상인 청년들은 한 달 평균 80만 원을 구직 활동에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가 19일 전국 만 19~34세 구직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구직 청년 취업 준비 비용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구직 청년들의 최근 3개월간 월평균 취업 준비 비용은 약 58만 원으로 집계됐다. 6개월 미만은 56만 원, 6개월 이상~1년 미만은 52만 원, 1년 이상~1년 6개월 미만은 57만 원, 1년 6개월 이상~2년 미만은 67만 원, 2년 이상~3년 미만은 65만 원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19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청년일자리센터에서 직원이 대여용 면접 정장을 정리하는 모습. 2026.10.19/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해법은 산업 현장의 요구를 고려해 실질적 접점을 만드는 데 있다. 재계 관계자는 "AI 등 산업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기업들이 즉시 실무에 투입 가능한 경력직과 중고 신입을 선호하는 현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청년 구직자들의 취업 장벽 완화를 위해 정부는 일 경험 사업 확대 및 기업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기업은 인턴십과 현장실습 기회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이같은 미스 매치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기도 한다. 청년들에게 업무 경험을 제공하면서 기업으로서는 비교적 빠르게 현장 투입이 가능한 인재를 확보하려는 시도다.

소위 '채용연계형 인턴십'이다. 단순히 체험하는 수준을 넘어서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인턴 과정을 운영하면서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R&D(연구개발) 산학장학생 프로그램도 여러 기업들이 도입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이공계 주요 전공별로 핵심 분야의 석·박사 과정 재학생을 산학 장학생으로 선발해 졸업 후 입사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입사 이전에도 장학금과 복리후생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이 같은 환경 변화를 고려해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취업 제도를 활성화하려는 분위기다. 예컨대 LS전선의 경우 '채용연계형 인턴십'을 뽑을 때마다 경쟁률이 200대 1에 육박하는 탓에 연 1회 운용하던 기존 방식에서 확대해 이를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도적 지원과 국가적 생태계 마련도 필요하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대학 등 교육 현장 역시 직무 기반 실무 훈련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해 정부·기업·학계가 다 함께 청년들의 실전 경험 축적을 돕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부가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기업을 옥죄는 반기업적인 법과 규제를 들이대면 청년 일자리가 그만큼 없어진다는 얘기다. 기업인들은 "규제 개선과 투자 활성화를 통해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정년 연장도 이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이 논의 중인 법정 정년연장은 청년 일자리를 위축시킬 수 있어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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