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왜 좌절하나
청년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취업난과 자산 격차, 주거 불안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다면, 한국 청년들은 구직과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저항하고 있다. 분노와 타협, 우울을 반복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짚어봤다.
청년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취업난과 자산 격차, 주거 불안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다면, 한국 청년들은 구직과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저항하고 있다. 분노와 타협, 우울을 반복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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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거리가 분노로 들끓고 있다. 열악한 교육 환경에 반발한 고교생들의 동요로 시작된 시위는, 생활고에 직면한 청년과 서민층이 합세하며 거대한 불길로 번졌다. 정체된 구조를 향해 미래세대가 직접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은 남다르다. 반면 한국 청년들의 저항은 다른 궤적을 그린다. 광장으로 나서는 대신 구직을 단념하고 노동시장에서 조용히 이탈한다. 생애주기의 과업인 결혼과 출산마저 유예하거나 포기한다. 부정과 분노, 타협과 우울을 반복하면서도 끝내 체념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의 모습이다. 24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20대 비정규직 근로자는 134만3000명이다. 20대 전체 임금근로자 306만8000명의 10명 중 4명 이상(43. 8%)이 비정규직이다. 이는 전체 연령대의 비정규직 비중(38. 5%)을 상회하는 수치다. 5년 전인 2021년 전체 연령대의 비정규직 비율은 38. 4%로 지금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20대의 비정규직 비율은 40.
프랑스에서는 열악한 교육 환경에 항의하던 학생시위가 생활비와 기회박탈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로 번졌다. 인도에서는 의대 입학시험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각국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과 분노의 계기, 그리고 표현 방식은 제각각이다. 중국에서는 치열한 경쟁에 지친 청년들이 아예 경쟁에서 벗어나겠다는 '탕핑'(드러누워 있기)을 선택했다. 이들의 움직임에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기존 사회가 약속한 미래를 더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공통된 정서가 깔려 있다. 고학력에도 취업난에 시달리는 '교육의 배신'과 특권 세습, 치솟는 생계비가 맞물리면서 청년들은 미래를 박탈당했다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고, 이는 사회적 기회와 제도가 더 이상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으로 이어지며 집단적 저항으로 폭발한 것이다. 최근 프랑스 시위는 이러한 청년들의 분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9월 프랑스 파리 북부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은 교사 부족, 학교 시설 노후 등 교육 여건 악화에 반발해 거리로 나섰다.
고단했던 취업준비생 생활을 버텨내 첫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월급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금의 직장에서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도 흔들린다. 얼마 전까지 취업 전선에 있었던 머니투데이 수습기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이 바라본 현실이 한국 청년들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습기자들은 사회생활의 첫 관문인 취업부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김유빈 수습기자는 "정규직 취업을 위해 계약직을 하고, 계약직을 위해 인턴을 하고, 인턴을 위해 대외활동과 자격증을 준비하는 식"이라며 취업 준비 자체가 하나의 장기 프로젝트가 됐다고 말했다. 고지운 수습기자도 '경력을 위한 경력'을 준비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취업 장벽이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고용 부진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9월 20대(20~29세)의 월평균 고용률은 59.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의 배경에는 청년들의 불만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청년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저항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거리로 나서는 대신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취업과 자산 형성의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청년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단순히 좁은 취업문과 높은 집값 장벽이라는 현실만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노력해도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인식이 쌓이면 좌절은 분노로 바뀐다. 이른바 '한 방'에 기대를 걸기도 하지만, 그마저 성공하기 어렵다면 무력감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5단계 모델인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에 빗대어 살펴볼 수 있다. 청년들의 삶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델은 아니지만, 기존 성공 경로를 믿고 따르던 청년들이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부정 : "성실히 살면 되겠지"… 무너진 사다리 앞 첫 번째 착각 청년들은 사회에 진출할 때 자산 격차와 일자리 가뭄이라는 장벽에 마주한다.
한국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는 거리의 시위 대신 삶의 주요 단계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연애와 결혼, 출산은 물론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는 이른바 'N포 세대' 이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기성세대가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면, 오늘날 청년들 사이에서는 태어난 것 자체를 원망하는 '낳음 당했다'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과 자산 격차,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문화가 이같은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N포 현상'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청년들이 택한 '극단적 적응'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실제 결혼과 출산을 계획하지 않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혼 청년 중 결혼 계획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22년 75%에서 2024년 63. 1%로 11. 9%포인트(p) 하락했다. 같은 기간 자녀 출산 의향도 63. 3%에서 59. 3%로 낮아졌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청년들은 삶의 어려움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제도변경을 요구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한다"며 " 쉬었음 청년이나 출산파업처럼 조용한 형태로 소극적인 저항과 극단적 체념 형태로 표출되는 식"이라고 말했다.
#통상 매년 100명 정도 신입을 뽑던 IT(정보기술) 업계 A사는 올해 신입 채용을 20% 이상 줄였다. 현장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경력 선호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이는 더 강화됐다. AI(인공지능)가 산업 현장을 휩쓸면서 이른바 AX(인공지능 전환)가 청년 채용을 더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흐름에 AI 확산이 겹치면서 청년들의 신입 채용 문은 좁아지고 있다. 삼성을 제외한 주요 그룹의 신입 공채가 사라진 상황에서 기업들은 경력 채용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지난해 상반기 민간 채용 플랫폼에 올라온 공고를 분석한 결과 14만4000여건 중 경력 채용만 원하는 기업이 82%를 차지했다. 순수하게 신입직원만 채용하려는 기업은 2. 6%에 불과했다. 올 들어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 짙어지고 있다. 국내 주요 그룹 인사 담당자는 "AX가 고도화될수록 기획력이 있는 사람이 AI를 도구로 써서 업무를 수행하게 되고 이는 당장 신입이 덜 필요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30대에 들어선 A씨(31·여)는 5년 째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1년 넘게 공기업 취업 준비를 하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말고 생활비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지금은 생업이 됐다. 일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시험 준비는 멀어졌다. 대신 축적된 카페 근무 경험은 다른 카페로의 이직에 밑거름이 됐다. 이런 경험을 살려 카페 창업에 나서볼까도 생각했지만 알바비를 생활비로 충당하기에도 빠듯했다. 200만원 남짓한 알바비로는 수천만원의 보증금과 인테리어·장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A씨는 "창업하기에는 돈이 부족하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토로했다. A씨처럼 취업 전 잠시 거쳐 가려던 아르바이트를 사실상 생계 수단으로 삼게 된 청년 '프리터족'(프리+아르바이터)이 늘고 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우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지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여력은 좀처럼 생기지 않아 발생하는 현상이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7월 발표한 '202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졸업·중퇴 후 취업을 경험한 15~29세 청년 가운데 첫 일자리가 시간제였던 비중은 25.
#신혼부부로 현재 수도권 전셋집에 거주하며 서울로 출근하는 30대 A씨는 내년쯤 내 집 마련을 시도하려 했다. 집값 급등에 서울이었던 목표를 수도권으로 낮췄지만, 현재 거주지 근처에서는 20평대 기준으로도 6억원(정책대출 상한)이 훌쩍 넘어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설령 기준에 맞는 집을 찾더라도 대출규제 기조에 한도까지 대출이 어려워지자 A씨는 집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금부자만 집을 살 수 있냐'는 허탈감이 가득하다. 서울 집값이 역대 최장기 상승을 기록하고 그와 함께 수도권 집값 가격도 많이 오르면서 청년 세대의 '내 집 마련' 기회가 멀어지고 있다. 여기에 실거주 중심 정책으로 전세 매물이 줄자 월세화 현상이 강화된다. 매매·전세·월세의 트리플 강세로 청년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목돈을 모으기는 더 어려워졌다. 기존의 주거사다리 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89주 연속 올랐고 그간의 상승폭은 약 18. 1%다. 역대 최장 기간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여유자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청년층의 서울 안 내 집 마련 난이도가 매우 높아졌다.
자산 축적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청년들에게 주식시장은 적은 종잣돈으로 자산을 늘릴 수 있는 돌파구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주가가 급락하면서 청년들의 기대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특히 축적한 자산이 부족한 청년들은 레버리지를 활용해 투자 규모를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산 격차를 좁히기 위해 선택한 투자가 오히려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을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신용거래융자잔고는 30조5139억원으로 최근 주가 급락과 금융투자업계의 신용거래 제한 조치에도 여전히 30조원을 웃돌고 있다. 신용거래융자잔고는 투자자가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자금 중 아직 갚지 않은 금액으로,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의 대표적인 지표다. 2024년 말까지만 해도 16조원 수준이었던 신용거래융자잔고는 지난 6월 말 한때 38조원까지 불어났다. 2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약 2. 3배 증가한 셈이다. 주목할 부분은 청년층의 빚투 증가 속도다.
최근 출산율이 반등 추세지만 출산 전단계로 여겨지는 결혼 문턱은 여전히 높다. 특히 결혼적령기로 여겨지는 30대초반에서 미혼율이 매년 상승하면서 인구 감소 우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인구전문가들은 청년들이 결혼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에코붐 세대 '30~34세' 편입됐지만 미혼율 67% ━24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30~34세(1995~1991년생)의 미혼율(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비율)은 67%로, 조사를 시작한 2022년 이후 3년 만에 4%포인트(P)가 증가했다. 남성은 75%, 여성은 59%로 각각 3%P, 6%P가 증가했다. 우리나라 지난해 평균 초혼연령은 남성 33. 85세, 여성 31. 62세였지만 실제 30대 초반은 결혼하지 않은 인구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삶이 팍팍해지면서 결혼 하기가 더 쉽지 않아진 사회 풍토가 반영된 것이다. 월급으로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한 현실이 청년들을 결혼 포기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0~34세 남성의 혼인건수는 9만9000건, 여성은 9만5000건으로 각각 전년 대비 13% 증가했지만 이는 '기저효과'로 볼 수 있다.
# 대기업에 다니는 1992년생 김민성씨(가명)는 지난 6월 7일 아내와 함께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살면서 처음 자발적으로 참여한 집회였다. 김씨는 "주거권은 박탈당했고, 기회는 사라졌다. 그들(기성세대)은 책임지지 않고 이제는 투표권마저 침해당했다"며 "지금 대한민국은 내가 지켜왔던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2001년생 최지예씨는 동덕여대 재학 시절 남녀공학 전환 문제로 폭력시위가 벌어진 이후 '폭력시위 반대 운동'에 나섰다. 최씨는 "극단적 행동이 여성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대변되는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청년의 목소리를 제도권에 전하는 가교가 되겠다는 목표로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씨는 6·3 지방선거에서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국회의원실 인턴비서관으로 일하며 현실 정치 경험을 쌓고 있다. 취업난과 주거 불안, 자산 격차에서 비롯된 청년들의 박탈감이 정치적 행동으로 분출되고 있다. 불공정과 이중잣대에 반발해 직접 거리로 나서거나 제도권 정치에 뛰어드는 청년이 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A씨(27)는 한국장학재단 학자금대출 1500만원을 안고 있다. 카페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100만원가량 벌었지만 월세와 관리비로 60만원이 나갔다. 식비와 교통비까지 빼면 취업 준비에 쓸 돈은 거의 남지 않았다. 결국 한 저축은행에서 신용대출 500만원을 받아 학원비와 자격증 응시료,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했다. 취업하면 갚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구직 기간은 1년을 넘겼다. 면접과 시험 준비로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이면서 월수입은 8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월세와 생활비를 치르고 나면 저축은행 대출을 갚을 돈이 부족했고, 결국 분할상환금 일부를 연체했다.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빚이 2000만원이 넘은 셈이다. A씨의 사례처럼 학업을 마치고 일자리를 구하며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빌린 돈이 청년들의 자립을 가로막고 있다. 청년층 대출 차주들은 중장년층보다 다중채무와 저신용자 비중이 높고 장기연체 비율도 다른 세대보다 빠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말 19~34세 청년 중 대출을 보유한 이는 409만6660명으로, 신용정보 보유 청년의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