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미국 워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건물 탈탄소
지하 168m 깊이 배관 900개 매설…지열로 냉난방 조절
냉방 때 빼낸 열 난방에 재활용
에너지 수요부터 줄이고 재생전력 조달
물 사용도 줄여

지난 8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의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 약 200만㎡ 부지에 125개가 넘는 건물과 운동장, 녹지가 모여 있는 거대한 업무단지다.
이날 찾은 곳은 이 단지의 동쪽 구역인 '이스트캠퍼스'다. MS는 이곳 약 29만㎡ 부지에 있던 1980년대 사옥들을 새 건물로 교체하면서 냉난방 방식도 함께 바꿨다.
푸른 잔디가 깔린 크리켓 경기장과 운동장 아래에는 그 변화를 보여주는 시설이 숨어 있다. 땅속에 약 168m 깊이의 구멍 900개를 뚫고 그 안에 설치한 배관이다. 배관 속을 순환하는 물은 겨울에는 땅에서 열을 가져오고 여름에는 건물의 열을 땅으로 내보낸다.
운동장 인근의 '열에너지센터(Thermal Energy Center)'는 땅속 배관과 새 사옥들을 연결한다. MS는 이 센터를 통해 본사 동쪽 이스트캠퍼스의 새 사옥들에 '100% 무탄소 냉난방'을 공급한다고 설명한다. 일상적인 냉난방에 가스 같은 연료를 현장에서 태우는 대신 전기식 설비를 사용하고, 필요한 전력은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열을 버리지 않고 다시 쓰는 데 있다. 건물을 시원하게 만들면서 빼낸 열을 난방에 활용하고,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쓴다. 여기에 땅속의 일정한 온도까지 활용해 냉난방에 드는 에너지를 줄인다. 필요한 에너지부터 줄인 뒤 남은 수요는 재생전력으로 채운다.

이 시설은 이스트캠퍼스를 새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MS는 1980년대 지어진 오래된 사옥들을 교체하면서 냉난방 방식도 바꿨다.
설계 과정에서는 세 가지 방법을 비교했다. 첫 번째는 가스 설비를 전기보일러 등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MS의 사전 검토에서 이 방법은 에너지 사용량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는 건물마다 소형 히트펌프를 설치하는 방법이었다. 효율은 높지만 캠퍼스 규모에서는 필요한 장비와 냉매의 양이 많고 냉매의 지구온난화 영향 등 환경적 부담이 컸다.
최종 선택은 여러 건물의 냉난방을 한곳에서 관리하는 대형 히트펌프 시스템이었다. 건물마다 따로 열을 만들고 버리는 대신, 센터에 연결된 새 사옥들 사이에서 필요한 열을 나눠 쓰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땅속 배관과 냉난방에 쓸 에너지를 저장할 물탱크를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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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펌프는 전기를 이용해 열을 옮기는 장치다. 냉장고가 내부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 안을 차갑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MS는 냉방에 쓸 물을 차갑게 만드는 과정에서 빼낸 열을 난방에도 활용한다. 한 건물에서 냉방을 하고 다른 건물에서 난방이 필요하면, 한쪽에서 빼낸 열을 다른 쪽으로 보내 다시 쓰는 식이다.
땅속 배관은 부족하거나 남는 열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땅속은 바깥 공기보다 온도 변화가 작다. 추운 날에는 물을 땅속 배관으로 보내 미리 데운 뒤 히트펌프로 보낸다. 더운 날에는 건물에서 돌아온 따뜻한 물을 땅속으로 보내 식힌다. 물은 배관 안에서 계속 순환한다. 현장 기술 담당자는 히트펌프가 주된 설비이며 땅속 배관은 이를 보완한다고 설명했다.
센터의 큰 물탱크 일곱 개는 냉난방에 쓸 온수와 냉수를 저장하는 곳이다. MS가 현장에서 제시한 물 저장 용량은 약 32만2000갤런(122만리터)다. 물을 데우거나 차갑게 만들어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활용한다. 기술 담당자가 이를 "배터리처럼 작동하는 설비"라고 표현한 이유다. 미리 저장한 에너지를 활용해 냉난방 수요가 달라져도 대응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일반적인 중앙 냉난방시설보다 에너지 사용량을 약 5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바하 사드레딘 MS 부동산·업무공간 부문 글로벌 지속가능성 총괄은 건물마다 흩어진 설비를 한곳으로 모으는 것부터 에너지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땅속 온도를 활용해 효율을 더 높였다는 것이다.
물도 덜 쓴다. 일반적인 냉각탑은 물을 증발시켜 열을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증발한 만큼 물을 계속 보충해야 한다. 이 센터는 열을 다시 쓰고, 땅으로 내보내거나 물탱크에 저장해 냉각탑 사용을 줄인다. MS가 제시한 연간 물 절감량은 약 800만갤런(3000만리터)이다. 탄소를 줄이려 바꾼 냉난방 방식이 물 절약으로도 이어진 셈이다.
추위나 더위가 심할 때를 위한 보조 설비도 남겨뒀다. 한파로 난방열이 부족하면 전기보일러로 보충한다. 남는 열을 땅속 배관이나 물탱크만으로 처리하기 어려우면 냉각탑을 가동한다. 평소에는 열을 다시 쓰고 저장하는 설비를 활용하되, 수요가 크게 늘 때도 실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MS는 2030년까지 배출하는 탄소보다 더 많은 탄소를 제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냉난방뿐 아니라 새 사옥의 구내식당도 전기로 운영하도록 바꿨다. 건물을 지을 때는 철강과 콘크리트 등 자재를 만들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도 줄이려 한다. 사옥을 운영할 때뿐 아니라 짓는 과정에서도 배출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대규모 중앙 냉난방 시스템을 모든 사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땅속에 배관을 설치할 부지가 있어야 하고, 여러 건물의 냉난방을 연결할 만큼 수요도 충분해야 한다. 레드먼드에서는 여러 건물을 동시에 새로 짓는다는 점도 도움이 됐다. MS의 사무시설과 업무공간은 전 세계 약 600곳이르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개별 건물의 냉난방과 기존 구내식당을 전기로 바꾸는 등 여건에 맞는 방법을 찾는다.
사드레딘 총괄은 "먼저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데 집중한다"며 "가장 효율적인 건물과 시스템을 만든 다음 나머지 수요에 대해 100% 재생전력을 조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