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들이 1주일에 며칠만 문을 열고, 문을 열어도 오후 4시면 닫는다. 슈퍼마켓에 빈 선반이 보인다. 푸드뱅크(무료급식소)엔 사람들이 많다. 교통비가 너무 올라 도심에 쇼핑 다녀오면 3만5000원은 필요하다. 난방비가 10배 뛴 음식점이 있다. 필자 역시 10년 만에 찾은 고국에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일하고 있다. 미사일 공격 문제를 빼면 우크라이나가 이곳보다 일하기에 환경이 좋았다."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기자 리즈 쿡맨이 최근 영국의 작은 마을 펜리스에서 느낀 점을 다룬 기사의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영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0.3% 성장'에서 '0.6% 위축'으로 무려 0.9%포인트를 낮췄다.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한 역성장 전망이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가지 뜻밖에 벌어진 일들도 영국의 경제난에 영향을 줬지만, 최근에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문제의 '주범'으로까지 지목된다.
영국 분담금, 이민자 문제 등에 대한 불만으로 국민투표를 거쳐 결정된 브렉시트는 11개월의 전환기를 거쳐 2020년 12월31일(현지시간) 이후 실질적으로 시작됐다. EU와의 무역에 장벽이 생겼고, 기업의 투자가 줄었다. 외부 인력도 들어오기 어려워졌다. 공급 문제와 인력난으로 이어지고 이는 물가를 더 높였다. 물가를 잡기 위해 당국은 금리를 더 올릴 것이고, 이후 경기는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13일 영란은행(BOE) 통화정책위원회 조나단 해스켈은 브렉시트가 가구당 1000파운드(154만원) 규모의 경제적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기업 투자 축소 이후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훨씬 큰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캐서린 만 영란은행 정책위원은 브렉시트가 영국의 여전한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작년 12월 기준 10.5%)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물가는 뛰는데 임금은 따라가지 못하자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파업도 줄잇는다. 이제 영국 내 여론은 브렉시트에 대한 후회가 크다.(1~2월 3개 기관의 6번 여론조사 결과 평균 58%)
영국의 사례는 소위 '디커플링'이 쉽지 않다는 것과 세심하지 않은 정치적인 판단의 부작용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브렉시트뿐 아니라 러시아가 일으킨 예상 밖의 전쟁, 길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반도체 자국 유치전 등으로 세계화의 큰 흐름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매킨지 글로벌연구소(MGI)는 1월 보고서에서 자급자족에 근접한 나라는 없다고 단언한다. 나라에 필요한 하나 이상의 중요한 상품을 다른 나라에 25% 이상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MGI의 올리비아 화이트 국장은 어떤 국가와는 관계를 강화하고 다른 쪽과는 약화하는 건 가능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나 디커플링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도 비슷한 의견을 낸다. 마크 레너드 국장은 재택근무 확대, 재생 에너지 및 AI의 발전이 세계를 새로운 네트워크로 연결시킬 것이라며 '탈'세계화 아닌 '재'세계화를 주장한다. 또 이번 세계화는 특정 국가 중심이 아닌 다극화의 모습일 것으로 전망한다.
선택을 강요받는 글로벌 갈등의 시기를 맞았지만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제3의 길을 걷는 나라들의 등장은 세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미국이 시동을 건 미중 무역전쟁은 5년이 됐지만, 양국 교역량은 지난해 역대 최대였고 미국 기업인 테슬라·애플이 여전히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등 정치와 경제는 엇박자를 낸다. 우리도 국제정세 관련해 일부 과격한 여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세밀하게 계산되지 않은 정치적 판단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다른 나라 사례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