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위기감 없는 대한민국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5.02.04 02:03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다. 10년 후에도 "우리가 현재와 같은 수준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뒤처진다는 불안감, 변화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답답함,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진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잘하던 패턴에서 멀어진다는 느낌이 불안감을 키운다.

대한민국은 변화와 적응에 능숙한 국가였다. 1960년대 초반 다른 신생국가와 마찬가지로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을 채택했지만 곧 한계를 인식하고 공산품 수출을 통한 산업화라는 개발도상국으로선 유례를 찾기 힘든 전략을 채택했다. 저렴한 인건비에 기초한 경공업 제품의 수출이 경쟁국의 등장과 관세와 쿼터 등 수출환경 악화에 직면하자 중화학산업으로의 구조전환과 해외 공장건립이란 전략으로 맞섰다. 1990년대 냉전붕괴 직후부터 대한민국 기업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에 대거 진출하면서 무주공산이던 시장을 공략하고 생산거점을 확보했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경제로의 전환이 본격화하자 사회 전체를 디지털로 변화시키는 전략을 채택하며 빠르게 달라졌고 새로운 시장을 선점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끊임없이 사회를 휘몰아쳤다.

이런 변화와 적응이 둔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다. 구글, 페이스북 등으로 대표되는 데이터에 기반한 테크기업이 미국에서 등장했지만 우리는 이에 맞대응하지 못했다. 소프트웨어에 취약한 우리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이 시기부터라도 빠르게 대응했어야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분야는 우리보다는 미국이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스스로 선을 긋고 기존 시장에 집중하면서 현상유지를 목표로 했다. 결국 10년의 시간이 지나자 미국은 인공지능을 앞세운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빠른 성장과 변화를 거듭했다. 미국의 변화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따라잡기와 대응에 주력한 중국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하면서 미국과 진검승부를 벌인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위기의 시작이었다.

대한민국이 현상유지에 집착하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정치권이 자신의 역할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국가를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에 대한 큰 그림도 그리지 못했고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을 통한 문제해결도 하지 않았다. 권력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은 깊어졌지만 그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은 갖지 못한 상태가 반복되면서 대한민국의 장점이 점차 소멸했다. 국가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할 정치권이 자신의 임무를 방기하면서 관료집단 역시 과거의 에너지와 책임감을 잃게 됐다. 새롭게 무엇인가를 추진할 때 지원과 격려보다는 책임추궁이 더 무서운 시대가 됐다.그 결과가 2025년 정치적 진공상태인 것이다.

현상유지를 위한 전제조건인 국제질서는 급속히 붕괴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적합하게 변화하던 대한민국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우등생이라는 기억과 자만심이 현실을 외면하고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는 편협한 사회로 만들고 있다. 미국의 자유분방함과 도전의식도, 중국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도, 일본의 안정감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한민국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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