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리밸런싱이 필수가 됐을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5.03.25 06:00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지난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6%포인트나 대폭 낮춘 1.5%로 전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 동향에서도 우리나라는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부진한 '트리플 감소'를 보이며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전 산업 생산은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2월 이후 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내수가 침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 효과 등으로 물가 상승도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특히 기업들은 트럼프의 새로운 통상 정책, 중국과의 치열한 경합,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 AI 중심으로의 급격한 사업 재편 등으로 자칫하면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거란 위기감에 '리밸런싱(Rebalancing)'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리밸런싱은 주로 시장 변화에 따라 투자 자산의 비중을 다시 조정한다는 의미로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해고나 퇴직과 같은 인력 구조조정이 아니라, 비주력 사업이나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청산하여 사업구조를 핵심사업 위주로 재편하는 것을 일컫는다. 대내외 환경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재계에선 리밸런싱이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계열사 수를 빠르게 늘려가며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하던 기업들에게는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며 추진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포털에 따르면, 2019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대기업집단은 59개에서 88개로 늘었으며, 소속 기업 수는 2103개에서 3318개로 1215개나 늘었다. 특히 SK그룹은 2019년 111개였던 계열사가 2024년에는 무려 219개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대기업 계열사가 200개를 넘어선 것은 1987년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한편 2024년 기준 삼성은 63개, 현대차 70개, 한화 108개, 카카오 128개, 롯데 96개, 네이버 54개, LG는 6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들은 비핵심 계열사와 사업부를 매각하고 비슷한 사업을 한데 모으고, 손실이 많이 나는 사업은 청산을 서두르며 몸집을 줄이고 최대한 현금 확보에 집중하며 '혹한기'에 대비하고 있다. SK를 비롯해 롯데그룹, 포스코그룹은 크게는 조 단위 사업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LG, 현대차, 신세계그룹도 사업 매각이나 재무 건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계열사 수가 가장 많은 SK그룹은 작년에 '돌연사(서든데스)' 위기론을 꺼내며 강력한 리밸런싱 작업에 돌입했다. 전 계열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비핵심 자산이나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를 진행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지난해 11월 합병했으며, 재무 상황이 좋지 않았던 SK온은 금년 2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과 3사가 합병했다. SK㈜는 SK스페셜티 지분 85%를 사모펀드에 팔기로 했으며, SK네트웍스는 SK렌터카 지분 100%를 글로벌 사모펀드 어피니티에 8200억 원에 매각했다. 또한 SKC는 화학 원료 제조 자회사 SK피유코어를 4024억 원에 글랜우드PE에, 파인세라믹사업부는 한앤컴퍼니에 3600억 원에 각각 매각했다. SK에코플랜트는 SK오션플랜트 등 자회사를 매각하여 2조 원의 현금을 마련할 예정이다.

카카오그룹은 한때 170개가 넘던 계열사를 작년에 128개까지 줄였으며, 금년에도 고강도 리밸런싱을 추진 중이다. 모터사이클용 무선 통신기기 계열사 '세나테크놀로지'를 매각했으며, 카카오에서 '다음'을 분사한 후 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스크린 골프를 운영하는 카카오VX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대체불가토큰(NFT) 사업 부문을 철수하는 등 비주력 사업들을 빠르게 접고 있다.

롯데그룹도 작년 12월 말 국내 렌터카 시장 1위인 롯데렌탈을 어피니티에 매각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매각금액은 1조 5729억 원으로 알려졌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면서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 등 핵심 계열사들의 재무구조가 흔들리자 구조조정 차원에서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여 자금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또한 롯데웰푸드는 증평공장을 신라명과에 매각했고, 수원, 부산 등의 생산 공장을 추가로 매각할 예정이다. 코리아세븐 ATM 사업 부문, 롯데케미칼 해외 계열사,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등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그룹은 올해 61개 저수익 사업 및 비핵심자산을 매각하여 1조 50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작년에는 45건의 사업 및 자산을 매각해 6625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확보한 자금으로 미래 고수익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신세계그룹은 적자 폭이 늘어난 신세계건설 주식을 전량 매입하여 상장폐지를 하는 등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LG그룹도 LG화학의 에스테틱 사업부를 5000억 원 안팎에 팔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위아 공작기계 사업부를 3400억 원에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리밸런싱의 핵심은 '카브아웃(carve-out)'이다. 카브아웃은 딱딱한 물건을 칼로 파내거나 도려내는 걸 말하는데, 경영에서는 주로 대기업이 비핵심 계열사나 사업부를 떼어내 다른 기업에 팔거나 지분 일부를 넘기며 현금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매각 대상은 수익성이 나쁜 사업이 아니라, 비록 돈은 잘 벌어도 본업과 시너지가 크게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과 같은 시기에 카브아웃으로 수익성이 좋은 알짜 기업이나 사업부가 매물로 나오면 대부분 사모펀드로 넘어간다. 모두들 사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할 회사는 거의 없고, 최소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기업을 살 수 있는 여력은 사모펀드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다. 알짜 사업을 인수하여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면서, 평상시보다 낮은 밸류에 인수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사모펀드는 좋은 가격에 인수한다고 해서 끝이 나는 건 아니다. 더 큰 숙제가 있다. 비즈니스 특성상 몇 년 안에 밸류를 높여 되팔아야 하는 것이다.

글로벌기업들도 작년부터 수익성이 낮거나 전략적으로 시너지가 나지 않는 사업을 과감히 매각하면서 핵심기업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또한 매각하려는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사려는 사모펀드들도 많다.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안정적이며 성장 잠재력이 높은 비즈니스를 인수하기 위해 카브아웃 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특히 작년에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업가치가 낮게 형성된 유니레버, 지멘스 등 유럽 기업들의 카브아웃이 활발했으며, 금년에도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리밸런싱이 아무리 '생존'을 위한 핵심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각 여부나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이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될 임직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다.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고용보장과 더불어 위로금 지급 등으로 소속 변경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안 및 상실감 등을 진정으로 보듬어야 한다. 이것이 회사를 함께 키워 온 임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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