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2023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자동차 수출 1위를 차지한 이후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재편하고 있다. 지난 5월초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가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중국 자동차 업체와의 협력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할 정도다.
BYD, 체리자동차 등 중국 자동차 기업은 빠른 전기차 전환으로 내수시장에서 폭스바겐, 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점유율을 잠식한 후 이제 해외 시장에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체리가 영국에서 내놓은 중형 SUV '재쿠7'(Jaecoo 7)은 3월에만 1만64대가 팔리며 월간 판매 1위를 꿰찼다. 이는 중국 자동차가 처음 영국에서 판매 1위를 달성한 사례다.
지금 유럽에서는 BYD, 체리, 지리, 링파오 등 몇 년 전만 해도 현지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중국 브랜드가 빠르게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다. 해외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중국 자동차 산업을 살펴보자.
올들어 중국 자동차 시장이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이 중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올해 1~4월 중국 자동차 내수 판매는 644만7000대로 전년 대비 20.6% 급감했다. 내수 침체에다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구매시 전액 면제하던 취득세(10%)를 올해부터 50%만 면제한다. 전기차 가격의 5%를 취득세로 납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내수와 달리 수출은 성장세가 가팔라졌다. 올들어 4월까지 중국 자동차 수출은 313만대로 전년 대비 61.5% 급증했다. 그중 전기차 수출은 138만대를 기록하며 115.7% 폭증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기차가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2023년 자동차 491만대를 수출하며 일본(442만대)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 수출 1위를 차지한 이후 갈수록 일본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체리, BYD는 나란히 월간 수출기록을 경신했다. 4월 체리는 전년 대비 102.4% 급증한 17만7600대를 수출했다. 수출이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어섰다. BYD는 70.9% 증가한 13만4500대를 수출했으며 수출이 전체 판매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수출이 중국 자동차 기업의 성장 엔진으로 부상한 것이다.
중국 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로컬 브랜드의 해외 판매 비중은 22%로 불과 1년 만에 10%포인트 상승했다. 남미, 동남아뿐 아니라 유럽에서 중국 자동차 판매가 급증한 결과다.
2024년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최대 35.3%의 상계 관세를 추가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 추세가 강해지자 그해 중국 전기차 수출 증가율은 6.7%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 1월 중국과 EU 집행위원회의 자동차 관세에 합의하면서 EU가 설정한 최저가격 이상으로 판매되는 전기차는 상계관세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 수출의 관세 리스크가 크게 낮아진 것이다.
특히 이란전쟁 발발 이후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유럽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다. 최대 수혜자는 가성비 높은 저가 전기차로 시장을 공략 중인 BYD, 체리, 지리 등 중국 자동차 기업이다. 앞서 언급한 중형 SUV 재쿠7은 영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테무'(Temu) 레인지로버로 불리며 포드 퓨마, 기아 스포티지를 제치고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재쿠7의 가격은 최저 3만115파운드(약 6070만원)로 영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카가 중고차 가격에 새 차를 살 수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저렴하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전동화 추세를 타고 거침없이 진격하면서 폭스바겐·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중국내 입지는 좁아졌다. CPCA에 따르면 올해 4월 로컬 브랜드의 중국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69.6%로 2020년(35.7%) 대비 약 두 배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글로벌 브랜드 점유율은 64.3%에서 30%로 반토막났다. 독일계 점유율은 25.5%→13.3%로, 일본계는 24.1%→10.9%로, 미국계는 9.4%에서 4.5%로 급감했다. 2010년대 중반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이 고점을 찍고 급감한 경로를 폭스바겐·토요타·GM이 똑같이 따라오면서 중국에서 글로벌 브랜드가 완전히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로컬화를 가속화한 것은 전동화다. 2010년대 후반만 해도 로컬 브랜드 점유율은 40% 부근에서 정체된 이후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11월 중국이 '신에너지자동차산업 발전계획(2021~2035년)'을 발표하며 전기차 침투율(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을 2035년 50%로 끌어올리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전동화·로컬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중국은 계획보다 10년 앞선 2025년에 전기차 침투율 50%를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네이쥐안(內卷·과당경쟁)'은 중국 자동차 업계를 표현하는 대명사가 됐다.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중국 자동차 산업이 무한 경쟁에 진입하면서 전체 자동차 회사가 피말리는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네이쥐안의 결과는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신차와 내연차보다 낮은 전기차 가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브랜드가 신차 개발에 40~80개월을 필요로 하는 데 반해 중국은 최대 24개월이내 신차 개발을 완료한다며 이를 '차이나 스피드'로 명명했다.
폭스바겐·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는 중국 판매 급감과 해외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의 경쟁 강화라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폭스바겐은 독일 내 공장 10곳 중 2곳의 생산을 중단하고 2030년까지 최대 5만명을 감원하는 대대적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올해들어 한국에서도 중국 전기차 기업의 영향력이 부쩍 커지고 있다. 작년 한국에 본격 진출한 BYD는 11개월 만에 누적 판매 1만대를 돌파했으며 지리의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Zeekr)도 국내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차이나스피드로 해외로 뻗어가는 중국 자동차 산업은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