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인 2023년 3월 1일, 그리스에서 최소 57명 사망자를 낸 열차 정면충돌 사고 원인을 제공한 라리사역 역장이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됐다. 역장은 전날 사고 당시 여객열차에 잘못된 선로 변경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사고 현장을 찾은 그리스 총리는 "인간 실수에 의한 비극적 사고"라며 인재(人災)로 규정했으나 그리스 국민은 정부가 열악한 철도 안전 시스템을 오래 방치한 탓에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며 대규모 규탄 시위를 벌였다.
3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 직전, 그리스 북부 템페 시에서 승객 342명과 승무원 10명을 태우고 최대 시속 160㎞로 달리던 여객열차가 철판과 건축 자재 등을 실은 화물열차와 정면충돌하면서 화재와 탈선, 폭발 등이 일어났다.
여객열차는 수도 아테네에서 출발해 북부 테살로니키를 향하고 있었고, 화물열차는 테살로니키에서 라리사로 가고 있었다. 여객열차는 지하터널을 막 벗어나 고속 주행하던 중 마주 오던 화물열차와 정면충돌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돌 여파로 여객열차 기관부를 포함한 1·2호 객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3호 객차는 탈선했다. 충격에 열차 앞부분이 들리면서 객차 밖으로 튕겨 나간 승객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시신은 사고 지점에서 30~4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이 사고로 최소 57명이 숨지고 85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스 정부는 사고 수습을 위해 소방·경찰 인력 500명과 크레인 등 중장비를 투입했다. 그러나 화재로 1·2호차 내부 온도가 섭씨 1200~1500도까지 육박하면서 정확한 희생자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희생자 대부분이 황금연휴를 즐기고 귀향하던 20대 대학생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리스 경찰은 여객열차를 잘못된 선로로 보낸 라리사 역장을 A씨를 과실치사·중상해 등 혐의로 체포했다. 사고 당일 A씨가 역내 열차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여객열차에 선로를 바꾸라고 지시한 탓에 원래대로라면 상·하행 복선으로 엇갈려 지나가야 했던 두 열차가 같은 선로를 이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스 정부가 공개한 사고 당시 역무실·기관실 간 대화 녹취록엔 역장 A씨가 여객열차 기관사에게 "빨간색 출구 신호등을 통과해 네오이포로이(지역 이름) 입구 신호등 쪽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겼다. 기관사가 재차 "가도 됩니까"라고 묻자, A씨는 "가세요, 가세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 뒤 해당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지 매체는 그리스 정부가 분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열차 참사가 개인 실수에 의해 발생한 것처럼 보이도록 녹취록을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역장 A씨와 대화를 나눈 기관사가 사고 열차와 관련 없는 다른 열차 기관사로 확인된 점, 기관사 이름이 녹취록에서 삭제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리스 주요 야당은 정부가 열차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론에서 벗어나고자 증거를 조작한 것이라며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에게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해당 보도를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일각에선 그리스의 노후화한 철도 시스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리스 철도회사가 사고 지역 신호 시스템이 고장 난 걸 알면서도 방치해 자동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서 역장이 실수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리스 철도 노조는 "철로가 하나뿐인 단선 구간이 많고 열차 관제 시스템도 여전히 수동으로 운영 중"이라며 사고가 난 노선인 헬레닉 트레인이 2017년 이탈리아 기업에 인수된 후 철도 현대화가 부쩍 더뎌졌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의회는 열차 참사에 대해 4개월 동안 국정조사를 진행했지만 핵심 증인이 줄줄이 빠지면서 고위급 정치인들에 대한 책임은 따져보지도 못하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당시 교통부 장차관들만 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정도다.
이 사고 관련해선 역장 A씨를 비롯해 총 36명이 중·경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오는 3월 23일 열린다. 그리스 국민들은 참사 3주기에 전국적으로 파업하고 주요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