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을 느끼는 중산층과 좌파에 열광하는 젊은층, 분노를 키운 빈곤층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 르네상스가 나타나고 있다"-워싱턴포스트(WP)
2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들은 4년 만의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중도좌파연합 '모두의전선' 소속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는 48.1%를(개표율 97% 상황) 득표해 중도우파연합 '변화를 위해 함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40.4%)을 누르고 당선됐다.
35.4%까지 치솟은 빈곤율, 연 50%가 넘는 인플레이션, 낮은 임금과 '빚도 못 갚는 나라'라는 오명 속에, 아르헨티나의 부유했던 20세기 초를 떠올리게 하는 '페론주의'를 내세운 페르난데스다.
△페론주의, 향수의 대상? 경제파탄의 원흉?
페르난데스 당선자가 앞세운 페론주의란 1940년대 후안 페론 대통령과 에바 페론 영부인의 정치 활동 전반을 일컫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페론 전 대통령은 1946년 집권해 정치적으로 민족주의와 중앙집권화, 반엘리트주의를 내세웠고 경제적으로는 임금인상, 복지확대, 노동자 권한확대를 표방했다. 그래서 산업화와 국가경제 성장, 독재와 부패라는 장·단점이 뒤섞여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한쪽에선 페론주의를 무분별한 복지 확대, 임금인상 등 경제적 포퓰리즘의 원조로 해석한다. 페론주의 정당이 집권했을 때 임금을 연 20%씩 올리고 복지를 확대하면서 국가 빚이 폭증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저소득층 임금을 올리고 복지, 교육 등을 확대해 아르헨티나 국민총생산(GDP)을 127% 성장시키고 빈곤율을 낮췄다는 평가도 있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일본보다 잘 살았고, 프랑스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굴렸다. 1960년대까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임금 수준이 가장 높았고, 중산층이 전체 인구의 40%까지 늘기도 했다.
앞서 마크리 현 대통령은 중도우파로서 "포퓰리즘에서 나라를 해방시키겠다"는 슬로건으로 당선됐지만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채와 인플레이션 수준은 과거와 비슷한데 임금이 억제되면서 국민의 분노만 커졌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마크리 대통령이 여론 눈치를 보면서 과감한 개혁에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시장은 불안해 하고 있다
복지 확대 등을 내세운 페르난데스가 당선되기 전부터 금융시장은 긴장하고 있었다. 지난 8월 대선 예비선거에서 페르난데스가 압승하자 다음날 페소화는 30% 이상 폭락했다. 이달 13일 대선 1차 토론회 다음날에는 신용평가사 피치가 아르헨티나 신용등급을 기존 'CCC(상환 불가능성 있음)'에서 'CC(상환 불가능성 높음)'로 2개월 만에 강등했다.
페르난데스의 당선 이후인 이른 28일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지난달 1일부터 적용하던 달러 구매한도(월 1만달러)를 월 200달러로 대폭 줄였다. 가뜩이나 불안한 외환시장을 틀어막는 강경 조치이다.
앞서 아르헨티나에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있는 IMF(국제통화기금)는 "아르헨티나 채권투자자들이 가파른 손실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 투자주의보를 내리기도 했다. 페르난데스의 공약대로 복지가 확대되고, 긴축이 완화되면 아르헨티나의 상환 능력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IMF 채무불이행 전력이 8번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페르난데스 당선자는 "IMF가 요구한 긴축정책 때문에 아르헨티나 경기가 장기침체에 빠졌다"고 주장하며 IMF와 구제금융 재협상을 하려고 한다. IMF는 아르헨티나에 지원하기로 한 560억 달러 중 120억 달러의 집행은 미루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정부는 2021년부터 시작되는 상환 시기를 미뤄달라고 하는 상황이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총 외채는 2800억 달러(280조 원)가 넘는다.
한편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긴급 수혈'을 기다리고 있다. 대중들은 페르난데스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과거 대통령 8년 재임 시절 부패 문제로 정권을 넘겨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를 내세웠음에도 그에게 표를 줬다. 체육관을 운영한다는 한 시민은 투표 전 WP에 "지난 1년간 매출이 20% 떨어졌다"며 "마크리 대통령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크리스티나가 부패했단 걸 알지만 페르난데스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