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국내 거주 외국인, 경찰 찾는 외국인 위한 통역서비스는 제자리걸음
경찰이 글로벌시대를 맞아 국내 관광 외국인·유학생·다문화 가정을 겨냥해 운영중인 통역서비스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관광이나 유학중 물품을 잃어버리거나 '봉변'을 당해 경찰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보지만 정작 서비스 부족으로 '무용지물'이라는 불만까지 제기되는 상태다.
◇가방 잃어버리고 신고해도 '감감 무소식"
올 초 한국에 관광을 온 일본인 코지 키노시타씨(45)는 가방 분실 신고를 하는데 반나절 가까이 걸렸다. 코지씨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지만 경찰과 의사소통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서울에 사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오마씨(25)도 최근 퇴근길에 지갑을 뺏기는 소위 '퍽치기'를 당했지만 신고하지 않았다. 오마씨는 범행을 당한 직후 집 근처에 있는 지구대가 생각났지만 서툰 한국어 탓에 신고할 엄두가 안 났다고 털어놨다.
설 연휴 직전인 지난 20일 서울 B 경찰서에서는 중국인이 연루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새벽에 발생했지만 수사는 아침에야 시작됐다. 통역인을 구하지 못해서다.
이처럼 외국인이 연관된 범죄나 신고가 발생해도 경찰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이들을 위한 통역서비스가 있지만 필요할 때 도움이 되지 못해 일선에서도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통역서비스 많지만 사용하려면 '난감'
현재 경찰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통역서비스는 크게 3종류. 경찰청이 민간 통역인들과 연계해 운영중인 서비스와 문화관광부와 연결된 BBB서비스, 한국관광공사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시행중인 '1330 티티콜센터(이하 1330)'이다.
문제는 3종류나 되는 외국인 통역서비스가 있지만 현장에서 도움이 크게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찰청은 20년전인 1992년 9월 개방화시대를 맞아 늘어나는 외국인 범죄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9개 국어 요원 36명을 배치, 통역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이후 관광객 등 수요까지 확대해 현재는 민간요원 3000명을 포함해 전국 경찰에 3600여명의 통역담당자를 두고 필요에 따라 각 경찰서 등에 파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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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운영 통역서비스의 600여명은 외국어에 능통한 경찰관이지만 나머지는 민간 통역인이다. 민간 통역인 제도는 각 지방경찰청 내규에 따라 자체 고용해 통역 건당 임금을 주는 체제로 운영된다.
강제성이 없어 새벽에 통역이 필요해도 '손 쓸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민간 통역인은 의뢰를 수락하고 통역을 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새벽시간에는 의뢰가 들어와도 거부할 수 있다.
민간 통역인 활동을 하는 김모씨(28)는 "직업이 있는데 새벽에 3만원 받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며 "사전에 중요한 일이 있을 경우 곤란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연결된 문화체육관광부 등록 비영리단체 'BBB(Before Babel Brigade)'도 급할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18개 언어로 제공되는 BBB서비스는 24시간 가능하다고 소개하지만 실제로는 자정부터 아침7시 사이에는 연결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게 경찰의 지적이다.
'봉사 개념'인 탓에 연결이 되지 않아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경찰과 MOU를 맺고 서비스를 제공중인 한국관광공사 소속의 '1330'은 치안, 관광 등 전 분야의 통역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20여명에 불과한 인원에 BBB서비스처럼 통역에 대한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수사 실전'시 답답해진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도 "범죄는 24시간 발생하지만 통역서비스는 24시간 이용이 어렵기 때문에 수사나 해결이 늦어진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귀띔했다.
◇통역 틀리면 법적 책임은 누가?
경찰 외부인을 통해 통역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오역이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도 불명확하다.
경찰청이나 지방청에서 현장에 보내는 민간 통역인은 건당 임금을 받는 계약 직원이기 때문에 경찰 정규 직원처럼 문책이 힘들다.
경찰조사 내용을 민간 통역인에게 어느 부분까지 공유할 것인지도 명확한 매뉴얼이 없다. 서울 A 경찰서 외사과 소속 형사는 "한 통역관이 그 사건만 전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범죄 조사 과정을 면밀히 설명하는 것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관광 등 다양한 분야를 위한 통역서비스 BBB나 1330은 '법적책임'과 더욱 거리가 멀다.

'BBB'의 경우 전화를 걸면 "BBB는 통화내용에 대한 법적 책임은 없습니다"란 안내가 나온다. 무료 봉사활동자로 운영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오역이 있더라도 그 책임을 묻기 어렵다.
경찰청과 업무 양해각서(MOU)를 맺은 '1330' 관계자는 오역시 법적 책임을 묻는 질문에 "경찰과 조율이 필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 "다문화시대, 전문 통역요원 등 정부의 적극적 지원 필요"
1일 법무부 등록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2011년 국내 거주 외국인은 98만 명. 4년 전에 비해 13만 명이나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 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어 지난해는 1000만 명(한국관광공사 집계 기준) 가까이 한국을 찾았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찰서는 피의자, 피해자 모두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역제도가 마련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설 교수는 "수사과정에서 사용되는 법률 용어는 통역이 쉽지 않다"며 "민간 통역인들에게 관련 교육을 시키거나 전문 통역요원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특히 통역인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에 집중된 상황도 개선될 점으로 꼽았다.
민간단체 '이주민과 함께' 관계자는 "국내 거주 외국인 중 치안 관련 문제를 많이 겪고 있는 동남아시아나 제3세계 출신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다문화 시대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련 제도를 운영하지 않으면 사회내부 갈등이 쌓여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