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COVID-19) 이후 일상회복으로 일자리가 풍년인데도 청년들은 취업난에 허덕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현상과 고용시장의 '미스매치'(mismatch)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양극화)를 해소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지적이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2.1%로, 전년동월 대비 0.5%포인트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직과 구직 등 직업탐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적 실업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다. 그만큼 일자리가 넘친다는 뜻이다. 같은 달 취업자 증가폭은 전년동월 대비 80만7000명으로, 8월 기준으로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대치였다.
그러나 20대 청년들의 사정은 다르다. 올 상반기 전체 실업률은 평균 3.3%에 그쳤지만, 같은 기간 청년(만 15~29세) 실업률은 평균 6.9%에 달했다. 7월과 8월 각각 전체 실업률이 2.9%, 2.1%로 떨어지는 동안 청년 실업률은 6.8%, 5.4%로 낮아지는 데 그쳤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구직활동을 하는 사실상의 실업자까지 포함한 '확장실업률'의 경우 청년층은 올들어 매달 20% 안팎 수준을 유지하다 8월에도 18%를 기록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광주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A씨(만 29세·남)는 "상반기에 신입 공채에 5번 이상 지원했는데 다 탈락했다"며 "고용시장이 좋아졌다는 건 대체 누구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달 한 금융사에 취업한 B씨(만 27세·여)는 "취업까지 입사지원서를 총 50~100개 쓰는 것은 보통"이라며 "이과보다 문과 출신의 취업이 훨씬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일자리 호황이 청년들을 비껴가는 것은 기업들이 교육을 위한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들고 즉시 실무 투입이 가능한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수시채용이 일반화된 고용시장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갓 졸업해 경력이 없는 취업준비생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국내 5대 그룹(삼성·SK·현대차·LG·롯데) 가운데 아직까지 신입사원 공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삼성뿐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전문기관 의뢰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은 올 하반기 대졸 신규채용 인원 가운데 35.8%를 경력직으로 뽑을 계획이다. 올 상반기 29.7%보다 비중이 더욱 높아졌다.
B씨는 "기업 최종면접에 가보면 1~2명 빼고는 대부분 경력이 있었다"며 "경력을 가진 일명 '중고신입'이 많고 이들이 취업도 잘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일자리 수요와 공급이 어긋나는 미스매치도 청년 취업난의 주된 원인이다. 조선업·요식업·농업과 택시 등 특정 업종, 중소기업 등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한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빈 일자리 수는 23만4000개인데, 이 가운데 96%인 22만4000개가 '300인 미만 사업체'에서 발생했다. 반면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대기업·공공기관 등 처우가 좋은 곳으로 한정돼 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취직에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양질의 일자리로 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진입 자체를 늦추는 현상이 있는 것 같다"며 "처음에 열악한 일자리로 가게 되면 이른바 '유리 천장'이 있어서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이 임금·안정성 등 근로조건에 따라 사실상 두 개의 세계로 나눠지는 이중구조를 이런 미스매치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여름휴가에 앞서 "원청과 하청 노조 간 임금 이중구조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인 만큼 개선책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인식에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형적인 근로자 중심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노동법제 전반의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일하는 방식, 고용 형태 다변화에 맞춰 노동법 체계를 다층화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유빈 실장은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간접적으로 보조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일례로 정부가 운영 중인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이런 형태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차원의 여러 대안이 있겠지만 얼마나 효율적으로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한요셉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시장이 잘 작동된다면 인력난이 있는 곳의 임금이 올라 청년이 많이 유입돼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일례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조선업의 경우 수주는 많이 했어도 당장 이익이 난 것이 아니라 임금을 올리기 어려운 문제 등이 있다"며 "정부가 너무 전면에 나서면 안 되겠지만 예컨대 기금을 조성해 임금을 지원한 후 나중에 돌려받는 등 방식으로 조정에 나설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