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2017년 뉴욕의 한인들과 情의 가치

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
2025.03.27 02:03
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직업은 무엇일까. 연도별로 업종과 회사의 성과에 따라 순위가 바뀌겠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군 중 하나가 글로벌 사모펀드의 대표들일 것 같다.

2022년 8월 세계 3대 사모펀드로 꼽히는 칼라일의 한국계 CEO 이규성 회장이 사임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고 퇴직금으로 1억6000만달러 상당의 회사 주식을 받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원화로 2300억원이 넘는 큰돈이다.

사실 내게 더 중요했던 것은 이규성 회장이 받는 천문학적인 연봉이나 퇴직금보다 여전히 소수계 미국인인 그가 어떻게 글로벌 사모펀드의 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특히 칼라일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존 메이어 전 영국 총리 등 정치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을 채용했고 방위산업에 투자해 큰돈을 번 이력이 있는 사모펀드여서 더욱 궁금했다.

2017년 이규성 회장이 현재 버지니아 주지사인 글렌 영킨과 칼라일의 공동 CEO로 선임될 때 나는 KDB산업은행 뉴욕지점에 근무했다. 마침 같은 건물에 유럽계 사모펀드에 근무하는 대학 후배가 있어서 어떻게 한국계인 이규성 회장이 정치적 성향이 짙은 칼라일의 CEO가 될 수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는 "세계 경제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아시아 주요 3개국 중 하나인 일본인은 한국인만큼 공격적이지 않고 중국인은 미국인 밑에서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스마트한 한국인이 가장 적임자"라고 답했다. 공감이 가는 분석이었다.

이규성 회장 재임 중 칼라일 주가는 약 50% 상승했고 KB금융지주와 현대글로비스 등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CEO로서 성공적인 기록을 남겼지만 창업자들과 경영의 독립성에 대한 갈등으로 사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규성 회장이 칼라일의 공동 CEO로 선임된 2017년 말 뉴욕의 현지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 후배를 통해 KACF(Korean American Community Foundation)라는 한인단체의 송년 자선행사에 초대받았다. 행사장은 뉴욕 맨해튼 남단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역사적인 건물 치프리아니의 그랜드볼룸이었다. 치프리아니는 그리스 리바이벌 양식의 건물로 1841년 상인교환소(Merchants' Exchange)로 지어졌다가 1862년 미국 관세청빌딩으로 재건된 유서 깊은 곳이다.

이날 행사는 미국 공중파방송에서 스포츠캐스터와 앵커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두 분의 사회로 진행됐고 뉴욕 금융계의 최고 자리에 있는 한인들, 실리콘밸리에서 온 사업가, 유명 스포츠스타 등 만나기 어려운 한국계 인사가 많이 참석했다. 이 행사의 주목적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미국 내 한인 학생들과 노인들을 돕기 위한 기금모집이었는데 이날 저녁에만 100만달러 넘는 큰돈이 모금됐다.

요즘 KACF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KACF Annual Gala'라고 인터넷에서 검색하자 페이지 상단에 'Power of Jeong(정), 2025 Annual Gala'라는 문구가 떴다. 처음엔 이 단체의 회장의 성이 정씨인가 착각했지만 이내 한국인의 '정'(情)을 의미한다고 유추하게 됐다.

2017년 뉴욕에서 만난 한인들을 떠올리며 미국의 한인사회와 현재의 한국을 비교해봤다. 한국계 미국인 이규성 회장의 세계적인 사모펀드 칼라일 CEO 취임, 그리고 KACF라는 한인단체의 자선행사 등 희망적인 미국 내 한인들의 모습과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인 혼란, 부동산문제, 가계부채 등으로 시끄러운 한국의 모습이 대비된다. 미국에 있는 한인들은 소수계임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Jeong'(情)의 가치를 되새기며 치열한 노력으로 미국 사회의 핵심분야에 진출하는데 2025년 내가 있는 서울엔 어떤 희망적인 뉴스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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