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부동산 규제 전세 품귀,월세 급등
일하는 청년층 내집 마련 '사다리' 끊겨
역차별 받는 한국판 '헨리' 는 억울하다
"요즘은 집도 안보고 계약을 합니다. 전세 매물이 없으니 먼저 입금 하지않으면 선수를 빼앗기기 때문이죠."
한 부동산 유튜버는 최근 전세를 구하는 젊은층 사이에서 이른바 '노 룩(No Look)' 계약이 유행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전월세 시장이 불안하다.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80에 육박, 전세매물이 수요에 턱 없이 못미친다. KB부동산의 월세 가격지수도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이다.
필자는 부동산 투기가 망국병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갭투자'로 수십채의 아파트를 사모은 투기꾼에 대해 징벌적 과세로 폭리를 환수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계층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자. 세금 폭탄을 맞는 다주택자들일까. 어차피 집을 살 능력이 안돼 공공임대 당첨이나 바라봐야 하는 무주택 서민들일까.
아마 가장 어려움을 겪는 계층은 열심히 일하는 '흙수저' 출신 청년들일 것이다.
서울 대기업에 다니는 지방 출신 청년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대기업 신입 평균 연봉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빼면 실수령액은 4100만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생활비를 쓰고나면 월 저축 가능액은 120만~150만원 정도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작년말 기준 15억원을 넘었으니 승진 등으로 소득이 오른다고 해도 20년 정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이 가정도 전세물량이 많고 대출이 순조롭게 나와 자산 상승의 '사다리'가 작동할 때 얘기다.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급등하면 부모 도움을 못받는 흙수저 청년들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계층 이동을 하기 어렵다.
영국에서 '헨리'(HENRY: High Earners, Not Rich Yet)는 많이 벌지만 부자가 되기 어려운 젊은 고소득자들을 일컫는다.
프랑스에선 이 같은 계층을 '니콜라'라 부른다. 세금·사회보험과 월세를 내면 정작 본인은 집도 없고 노후도 불안한 젊은이들이다. 복지혜택을 받기에는 소득이 높고 부자가 되기엔 자산 축적이 힘든 '낀 계층'이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청년층은 한국판 '헨리', '니콜라'라 할 수 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부담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월세절벽까지 겹치면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주택을 받기에는 소득이 높아 자격요건이 안되고 민간 주택을 매입하기엔 자금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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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세입자의 천국'이라 불린다. 세입자단체가 임대인단체와 협상을 통해 임대료 인상률을 1% 안팎으로 묶는다.반면 세를 얻으려는 젊은이들에겐 지옥이다. 최소 수년간, 길게는 10년 이상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임대사업자도 수익성이 낮아 공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2021년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스테판 뢰벤 총리는 신규주택에 한해 임대료 상한제를 없애는 법안을 추진하다 총리에서 물러났다. 뢰벤 총리는 재신임투표를 거쳐 복귀했지만 임대료 개혁법안은 물 건너 갔다.
한국도 스웨덴과 비슷한 길을 걷게될 우려가 있다. 입지·원가 등 시장가격을 무시한 공공임대 주택 보급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예컨대 압구정동 2·3지역 재건축에서 계획된 공공임대는 971 가구다. 서울 다른 지역보다 원가가 훨씬 많이 들어가지만 공공임대의 성격상 임대료와 보증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없다. 또 소득 제한선을 넘은 젊은 부부에겐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공정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불공정한 시스템이다. 운 좋게 공공임대에 들어간 사람들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고,주택이 필요한 청년들은 더 비용을 지불하려 해도 진입하기 어려운 불평등한 구조다.전월세 절벽이 펼쳐지면 한국의 '헨리'들은 주거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고소득이라도 부모에게 물려받을 게 없는 젊은이들에는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를 터줘야 한다. 그들에게 부담만 요구하고 혜택에서 제외하는 것은 가혹한 역차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