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 사건을 무죄에서 유죄로 뒤집은 판결을 한 고(故) 신종오 서울고법 판사(27기) 유족이 소방당국에 '신 판사가 실종됐다'는 취지의 신고를 하는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해당 파일에는 신 판사의 과로 정황이 담겼다.
11일 소방청이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119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신 판사의 아내는 지난 6일 "남편이 지난주 ○○○ 항소심 재판장이었다"며 "한 두 달 동안 계속 잠을 거의 못 자고 일했다"고 했다. 유족이 말한 항소심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 판사에 대한 신고는 딸이 같은 날 0시13분쯤 소방서에 전화하며 이뤄졌다. 신 판사의 딸은 "아빠가 그러실 분이 아닌데 출근하시고 연락이 너무 안 되고 집에 안 들어오신다"며 "휴대폰 전화 신호는 가는데 안 받고,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17시에 했는데 그때부터 확인을 아예 안 한다"고 말했다. 녹취에 따르면 신 판사는 가족들과 2~3시간 단위로 연락을 나눠왔다.
유족이 위치 추적을 요청하자 무슨 사유 때문인지 묻는 소방 당국 관계자의 물음에, 신 판사의 아내가 전화를 바꿔 들었다. 이에 아내는 신 판사가 지난 한 두 달 간 잠을 못 자고 일했다고 했다.
아내는 "오늘(5일)도 밀린 일이 많아 아침에 택시를 타고 서울고법에 출근했다"며 "아침에 택시를 타고 내린 뒤 카드 사용 내역이 없다"고 부연했다. 당시 법원 당직 직원들도 신 판사의 사무실 등을 확인했으나 컴퓨터 전원과 사무실 전등이 켜져 있을 뿐, 신 판사를 찾지 못했다.
신 판사는 유족의 신고 후 1시간이 안 된 시점인 6일 오전 1시쯤 서울고법 청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신 판사가 당시 입고 있던 옷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죄송하다. 스스로 떠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유서에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항소심 등 재판과 관련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신 판사가 최근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사건을 맡으며 업무 부담이 가중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 판사는 지난 2월부터 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고법 형사15-2부에 부임했다. 해당 재판부는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서울고법에 설치된 내란전담재판부로 인해 새롭게 생긴 곳이다. 내란 전담으로 지정된 형사1부에 있던 사건들이 대거 형사15-2부로 옮겨졌다고 한다. 업무 부담이 컸을 것으로 예측되는 지점이다.
실제로 서울고법 판사들에 따르면 신 판사가 있던 재판부의 업무 강도는 높은 편이다. 해당 재판부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대장동 50억원' 의혹과 관련한 범죄수익 은닉 규제법 위반 혐의 항소심을 심리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부패 사건을 맡는 재판부는 업무가 아주 힘들다"며 "특정경제범죄 사건들은 다 해당 재판부로 간다"고 했다.
신 판사는 지난달 28일 김 여사의 자본시장법·정치자금법 위반 및 특정범죄가중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 항소심의 주심이었다. 신 판사 등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자본시장법 위반)와 통일교 청탁 (특정범죄가중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유죄로 뒤집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심의 징역 1년 8개월보다 형량은 2년 4개월 늘어났다.
신 판사와 함께 일했던 동료는 "사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며 "특히나 김 여사 사건 등 관심도가 높은 사건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 판사는 2001년 서울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법) 의정부지원에 처음으로 근무하기 시작해 △울산지법 △서울서부지법에서 일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뒤 2013년 대전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로 보임됐고 이듬해 서울고법 판사로 임명됐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 109 또는 자살 예방 SNS 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