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벌운영 복지재단, 늑장대응 관련 부처 , 뒷북치는 정치권

(서울=뉴스1 정현상 기자) "'불편한 진실'을 접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지난 22일 개봉한 이후 불과 닷새만에 관객 100만명을돌파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 '도가니' 황동혁 감독이 "영화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는감상평을 밝힌 관객들을 향해 던진말이다.
정부가 외면해온 장애인 인권문제를영화로파헤쳐 공론화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영화의원작자인 공지영 작가는 이 불편한 진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 작가는트위터를 통해 "다시는 장애인 아이들을 그 끔찍한 '도가니' 속으로 빠뜨리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복지재단, 인권유린 쉬쉬하며 장애인 돈 가로채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르면 사회복지법인 이사회는 공익이사를 선임할 의무가 없어 상당수가 친인척, 지인 등 족벌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장애인 인권을 유린해도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심지어는 운영자 개인이 정부지원금과 각종 후원금을 가로채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 1996년 11월 평택 에바다복지회에서는 최모 재단이사장과 관련된 13명 친·인척들이 유령직원으로 근무하며 88명의 장애인 아동들을 이중 등록시키는 방식으로 모두 3억3000만원 국고지원금을 횡령했다.
장애인 아동들을 제본공장에 보내 강제노역을 시켜 임금을 횡령하거나인신매매와 미군에 의한 성추행을 방조한 의혹까지 제기됐다.
정신요양시설, 장애인생활시설 등 13곳을 운영해온 성람재단은 2006년 6월 장애여성 성추행 사건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2007년 8월에 열린성람재단 2심 공판은 노무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무산된 시기와도 겹쳐관심이 모아졌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조태영 성람재단 전 이사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또하영태 서울정신요양원 구매과장과 유진순 전 서울정신요양원 원장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박진성 현 서울정신요양원 원장에게는 벌금 1000만원 등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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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판부는 "조사과정에서 국고 27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추가로 제기됐지만 횡령액 중 일부는 목적에 맞게 사용한 것"이라며 "성람재단이 원대한 뜻을 가지고 사회복지사업을 편 사실은 인정한다"고 형량을 낮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이 사건들도 영화 '도가니'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사건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재조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 도가니같은 일을 막기 위해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한나라당과 복지재단을 운영하는 종교단체 반발로 무산됐다"며 "영화팬들은 법 개정과 재수사를 촉구하는 국회 앞 1인 시위를 벌여달라"고 요청했다.
◇ 복지부 2012년 하반기 '복지재단 투명성 강화' 법 개정 검토 중
이처럼 장애인 인권유린 사건을 재수사하라는 움직임이 일자 정부 당국도 뒤늦게 장애인 특수학교 등 복지재단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하반기 19대 국회 제출을 목표로 복지재단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이날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보도자료를 통해 "사회복지법인이 취약계층 보호라는 본래의 공익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곧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복지재단 투명성 확보와족벌경영 방지를 위한 회계·결산·후원금 상세보고 의무화, 공익이사 선임을 포함하는법인 임원제도 개선, 불법행위 적발 시 직무정지,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감독 기능 강화 등 내용이 담겼다.
진 의원은 "지난 2000년부터 5년간 벌어진 광주 인화학교사건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총체적 부조리를 그대로 보여준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며 "이 사건은 현재진형형으로 성범죄 가해자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나 학교로 복직했고 문제의 학교법인은 여전히 이사장 친인척 등이 요직을 맡아 족벌경영을 계속하고 있다"고 뒤늦게 비판했다.
또 "여·야는 당리당략을 떠나 취약계층에 대한 인권유린이 더이상자행되지 않도록 관련 법안을 우선 심의해야 한다"며 "정부도 실효적인 관리·감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내년 하반기는 "시기적으로너무 늦은 것 아니냐"며 정부의느긋한 대응을 지적하는 여론은 여전하다.
실제로 영화를 본 시민과 누리꾼들은 재수사와 폐교를 청원하면서 분개하고 있다.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가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하고 있는 성폭력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이슈 청원에는 28일 현재 5만명이 넘는 인원이 서명했다.
◇정치권도 뒤흔든 영화 '도가니', 여야 의원들 "'도가니' 국회서함께 보자"
영화 소식을 들은 여야 의원들도 뒤늦게장애인 인권개선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28일 여야는 사회복지법인 이사회 구성 시 공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정비하자고 입을 모았다.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영화 도가니의 국회시사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문학·영화계가 적극적으로 장애인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확산시키자 뒤늦게 정치권이 뛰어든 셈이다.
이같은 움직임과 관련해"최근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가 발생하면서 사회참여 대중문화예술인으로 불리는 '소셜테이너'들이 크게 증가해 이들의발언과 행동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이기존 정치지도자나 대학교수, 종교지도자 등보다도 더 커진 것"이라는분석도 많다.
우선 한나라당은 당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장애인 인권 개선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8일 국회 대정부질문 대책회의에서 "도가니라는 영화로 모 학교의 장애인 인권에 관한 문제가 심각히 논의되고 있다"며 "사회복지사업법 등 관련 법규를 정비해 감독을 강화하고 이 땅에서 장애인들이 떳떳이 살 수 있도록 장애인 인권을 뒷받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오 의원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영화 도가니 실체인 광주 모 학교가 사회복지법인이라면 복지부가 재단허가를 취소하고 교과부 소관이라면 즉각 폐교 조치 후사정당국에 고발조치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일단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재추진키로 했다. 개정안은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사회복지법인 이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지역사회 등 외부기관 추천을 받은 공익이사들로 이사회의 25%를 채우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에게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지 않게 할 의무, 정의를 바로 세울 의무가 있다"며 "2007년 한나라당 반발로 막힌 사회복지사업법 개정과 아동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법과 제도적으로 성범죄를 가볍게 여기고 그나마 법조차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며 "성범죄 처벌이 엄격히 강화되도록 하는 등 강력한 대책을 세워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