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연의 머니로드]

1996년 2월 10일 미국 뉴욕 에퀴터블센터. 전 세계의 체스팬들은 세기의 대결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몰렸다.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사람 대 기계'의 첫 대결. 바로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구소련의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와 IBM이 개발한 체스 컴퓨터 '딥 블루(Deep Blue)'의 승부였다.
세간의 관심은 체스 마스터보다 딥 블루에 쏠렸다. 단순 연산처리가 아닌 생각하는 기계로서 컴퓨터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사실상의 첫 무대였기 때문이다.
높이 2m, 무게 1.4t의 딥블루는 IBM연구소가 미국 체스 챔피언 출신인 조엘 벤저민과 합작해 탄생시킨 역작이다. 당시 딥 블루는 1초에 2억 가지 수를 비교, 최적치를 선택하는 놀라운 연산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체스 고수들이 1초에 읽을 수 있는 행마가 3~5가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체스 괴물'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첫 대국은 딥 블루가 승리했다. 하지만 나머지 다섯 번의 대국에서 2무 3패를 기록하면서 카스파로프가 최종 승리자가 됐다.
IBM은 딥 블루의 패배이후 엄청난 성능개선 작업을 진행했고, 이듬해 두 번째 세기의 대결을 성사시켰다. 이 두 번째 대결에서는 딥 블루가 승리, 세계 챔피언을 꺾은 최초의 컴퓨터가 됐다.
당시 딥 블루의 승리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급속도로 발전하는 컴퓨터 기술이 언젠가 인간을 대신할 것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게임은 카스파로프와 딥 블루의 대결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지만 점점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양상이다.
카스파로프는 2003년 딥주니어(Deep Junior)에게 3대3으로 비겼고, 그의 제자 블라디미르 크람릭(Vladimir Kramnik)은 2006년 독일 체스프로그램 딥프리츠(Deep Fritz)에게 4무 2패로 지고 만다.
그렇다면 투자의 세계에서는 어떨까. 투자전문가인 펀드매니저와 컴퓨터가 붙는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
지금까지의 투자성과로만 본다면 컴퓨터가 펀드매니저를 대신할 날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이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일반 주식형펀드와 금융공학기법으로 운용되는 퀀트펀드의 장단기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퀀트펀드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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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펀드는 펀드매니저들의 개인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컴퓨터에 미리 입력된 과학적 계량분석 기법으로만 주식을 매매하는 상품이다. 이를 테면 일정 규모로 실적이 성장하는 기업들만 선별해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런 기계적인 투자방식으로 퀀트펀드는 최근 1년, 3년, 5년 수익률이 각각 25.7%, 86.8%, 51.6%를 기록했다. 이는 일반 주식형펀드(19.7%, 70.1%, 50.8%)보다 각각 6%포인트, 16.8%포인트, 0.8%포인트 우수한 수익률이다.
하지만 퀀트펀드에는 아직 큰 약점이 있다. 11.11 옵션사태 등과 같은 돌발변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계량분석 기법이외의 변수가 발생하면 수익률이 곤두박질 칠 수도 있다.
또 기업과 경영자의 경쟁력 등 계량화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재무적으로 멀쩡하던 기업이나 그룹이 오너 리스크에 노출될 경우 기대한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퀀트펀드의 최근 1~6개월 단기 수익률이 일반 주식형펀드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8월 미국발 신용등급 강등이후 주가가 급등락하자 퀀트펀드 대다수는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컴퓨터 펀드매니저가 투자의 세계에서는 조금더 유리해 보인다. 투자의 가장 큰 적인 `공포와 탐욕`이 컴퓨터에게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