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배상은 인턴기자 =

1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423호 법정. 불투명 유리 여섯 칸으로 만들어진 '차폐시설'(그림)이 이례적으로 법정에 등장했다.
그간 베일에 가려있던 국가정보원 해외비밀요원(일명 '블랙')들의 증언을 위해서다.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고 활동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왕재산’ 사건 재판이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염기창 부장판사) 심리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재판부는 증언할 국정원 요원들의 신분노출을 막기 위해 증인의 후면과 검사석, 변호인석 사이에 차단막을 설치해 그 안에서 증인이 신문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때문에 기존의 증인석이 아닌 차폐시설 안에 임시로 마련된 증인석에서 증인 신문이 이루어졌다.
취재기자, 피고인의 가족 등 모든 방청객들의 입장이 차단된 법정에 들어가기 위해 변호인들은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어주는 정리들에게 일일이 피고인측의 변호인이라는 신분확인을 거치고 입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국정원 비밀요원 3명에 대한 증인 신문은 3시간만에 끝났고 약 20분 정도의 휴정시간을 거쳐 오후 5시 20분부터 다시 공개재판으로 전환돼 진행됐다.
재판이 끝난 후 피고인측 변호인은 차폐시설 안에서 진행된 증인신문에 대해 "판사들 뿐 아니라 정리, 속기사 등 법원 직원마저 증인을 보는데 변호인만 증인의 얼굴을 못 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이는 증인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가려 탄핵시켜야 하는 입장에 있는 변호인들의 반대신문권이 완전 차단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성폭력 사건 같은 경우 차폐시설을 설치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지 않도록 하는 경우도 있지만 법정 안에서 변호인마저 증인의 얼굴을 못보게 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열렸던 9일 공판에서 검찰은 해외에서 '왕재산'의 조직원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접선하는 모습 등을 직접 촬영한 국가정보원 직원 3명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이들에 대한 보안유지를 위해 법정에 '차폐시설'을 설치할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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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폐시설은 칸막이로 증인의 몸을 둘러싸 증인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는 장치로 신변에 위협을 느낀 증인이나 성범죄 피해자가 진술을 할 경우 등을 제외하고 법정 안에 차폐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검찰은 "증인 3명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정원 비밀요원이기 때문에 신분노출의 우려로 국정원 직원법에 의해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해야 할 뿐 아니라 차폐시설을 설치해 얼굴을 볼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차폐시설 설치 이유를 밝혔다.
한편 이날 오후 재판에 앞서 공개재판으로 진행된 오전 재판에서 변호인들은 "국정원의 해외증거수집과정에 문제가 있으니 국정원 직원들이 촬영한 증거품을 위법수집증거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7월 중국에서 대북관련 첩보를 수집하던 국정원 간부가 중국 공안당국에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사건 등을 보도한 신문기사들을 증거로 제출했다.
또 변호인들은 방청석에서 재판내용을 메모중이던 국정원 여직원을 가리키며 "재판장의 허가없이 국정원 직원들이 이를 메모해 국정원에 보고하고, 또 언론에 노출할 수도 있다"면서 "재판장 권한으로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판사는 "공판이기 때문에 메모가 가능하다"면서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