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희망의 배신..칼럼니스트의 화이트칼라 구직체험기
현재 미국 사회의 모습은 소수 자본가와 엘리트가 부를 독점하던 19세기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마크 트웨인이 풍자소설 '도금 시대'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온갖 욕망과 부조리가 난무하는 마치 정글과 같은 사회다.
이런 와중에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저임금 단순 노동자로 전락해 희망을 잊은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이들이 늘어간다. 사회가 그야말로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바버라 애런라이크는 책 '희망의 배신'에서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나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일자리 불안과 과다 노동에 지쳐가는 미국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한다.
화이트 칼라가 일단 해고되면 마주치는 것은 실직자를 볼모로 돈을 버는 구직컨설턴트와 아무런 복지없이 미끼상술만 판치는 프랜차이즈·영업직 뿐인 게 현재 미국의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전작 '노동의 배신'에서 몸소 직접 3년간 웨이트리스, 청소부, 대형마트 직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데도 가난해지는 '워킹 푸어'의 현실을 고발하고 '가난한 사람은 게을러서 그렇다'는 잘못된 편견을 깨뜨렸다.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그녀는 이같은 '르포르타주' 방식을 이 책에서도 적용해 기업 홍보담당 간부직원이 되고자 10개월간 노력한 경험을 담았다.
비싼 돈으로 취업컨설팅을 받아 이력서를 꾸미고 화장은 물론 성격까지 순종적으로 고치면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니며 노력했으나 결국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미국의 많은 화이트 칼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저자는 개인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 수준의 광기 이면에 존재하는 거시적 수준의 비합리성을 타파하기 위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하며, 블루칼라 노동자들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불완전한 고용에 시달리는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실업수당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 대안기업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도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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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기업에 던지는 신랄한 비판은 아직도 과거 신자유주의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국기업들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많다.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미국 기업은 '포식자의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과거의 기업은 사람을 키우고 발전시켜야 할 장기자산으로 간주했지만, 지금은 줄여야 할 단기경비로 본다. 사람을 생산 방정식의 한 가지 변수에 불과한 '물건'으로 여기므로 숫자가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 '물건'은 언제든 버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최고경영자(CEO)들이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으로 자신의 수입을 늘리는 희한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리해고를 단행한 CEO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겼으며, 대부분 서비스직을 아웃소싱한 50개 미국기업 CEO의 보수 인상폭이 다른 회사에 비해 5배나 높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런 현상이 엄청난 사회적 비효율을 낳는다고 비판했다. "미국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직원에 대한 인간 본연의 배려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방종 문화와 그로 인해 빚어진 무능"이라는 지적은 다가올 산업구조의 변화를 대비해야 할 CEO라면 깊이 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최고경영자가 자신은 고액연봉을 받으면서 회사를 위해 오랫동안 기여한 장기근속자를 무작정 정리해고 해선 안 됩니다. 기업조직을 비롯한 모든 사회계층이 변화에 참여해 새로운 태도와 문화를 익히고 새로운 경제로 편입되도록 돕지 않으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경고다.
◇희망의 배신-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304쪽. 1만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