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해준다"에 '노예생활' 1년했는데…"그만 나가라"

"정규직 해준다"에 '노예생활' 1년했는데…"그만 나가라"

신희은 기자
2014.11.21 05:19

청년유니온, 11일간 38건 제보 접수…"임금체불·부당해고 등 다수"

청년유니온이 지난 9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블랙기업 운동' 선포식을 가졌다./사진제공=청년유니온 페이스북
청년유니온이 지난 9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블랙기업 운동' 선포식을 가졌다./사진제공=청년유니온 페이스북

# "실제로 회사에 안착하는 신입사원은 열에 아홉도 안된다. 그냥 깔끔하게 인턴했다고 생각해라."

대학졸업 후 6개월간의 구직활동 끝에 한 오일 트레이딩 회사에 입사한 김민석군(29·가명)의 첫 사회생활은 악몽으로 끝났다.

김군은 정규직 신입사원으로 채용됐다는 회사의 말만 믿고 면접을 앞두고 있던 다른 회사도 포기하고 근로계약서를 썼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수당 없는 야근과 사장의 욕설과 폭언에도 김군은 첫 직장에 대한 애착으로 묵묵히 참고 견뎠다.

입사 2개월 만인 10월, 김군은 회사로부터 '업무 부적응'을 이유로 돌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뒤늦게 확인해보니 김군은 4대 보험에 가입조차 돼 있지 않았고 정규직 신분도 아니었다. 강제로 내쫓긴 상황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신입사원을 채용해 2~3개월 지나면 해고 통보를 반복하는 거예요. 제대로 된 회사에 취업할 기회도 잃어버리고 허무하게 쓰다 버려지는 피해자들만 속출하는 거죠."

#"면접 때는 지금 아르바이트 신분이지만 3개월 뒤 정규직 전환이라고 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A생명 영업지원 사무직으로 입사한 김나라양(21·여·가명)은 회사의 정규직 전환 약속을 믿고 열심히 일했다.

3개월이 지나자 회사는 "6개월 뒤에 전환해주겠다"고 말을 바꿨다. 6개월이 더 지나도 회사는 "조금만 더 견뎌보라"고 했다.

김양은 정규직 전환만을 바라보며 1년을 더 기다렸지만 전환을 앞둔 한 달 전에 지점장으로부터 "그만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양은 일하는 동안 정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기 명의로 보험을 가입하고 야근수당도 없이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정직원들이 가는 정기 여름휴가도 챙기지 못했지만 결국 퇴직금 한 푼 없이 빈손으로 회사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20~30대 청년들을 고용해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는 이른바 '블랙기업'에 대한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본지 10월13일자 "쓰고 버리는 신입사원? 늘어나는 한국판 '블랙기업'" 참조)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청년유니온은 지난 9일부터 19일 현재까지 11일간 블랙기업 제보사이트를 통해 38건의 사례를 접수, 이 가운데 상세 내용이 포함된 26건을 분석했다.

제보연령은 21~37세로 남성이 주를 이뤘다. 제보자들이 종사하는 업종은 제조업과 외식업, 건설업, 유통업, 임대업, 출판광고업, 병원, 게임·소프트웨어 개발 등 다양했다.

제보자들은 블랙기업이 주로 △반복적인 임금체불 △법정수당(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등) 미지급 △장시간근로 강요 △수습사원 불이익 강제 △정규직 위장 채용 △'업무 부적응'을 근거로 한 부당해고 △직장 내 성추행 △자진퇴사 강요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장기간 인턴(수습) 채용 등을 일삼는다고 고발했다.

제보자들이 고발한 블랙기업의 부당행위는 업종, 비정규직과 정규직, 영세업체와 대기업, 불법과 탈법을 가리지 않았다.

청년의 아버지가 직접 제보를 접수한 경우도 있었다. 한 50대 아버지는 "아들이 대형마트 계열사 슈퍼마켓에 공채로 입사한지 1년가량 됐다"며 "아들을 보다보면 대기업의 근로여건에 대한 횡포가 도를 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들은 일주일 중 4일은 아침 7시30분쯤 매장으로 출근해 밤 11시쯤 퇴근하는데 집에 오면 피곤해서 잠만 자기 일쑤"라며 "힘들어 그만두더라도 계속해서 사원을 모집해 충당하면 그만이라 30여년전 우리 시절보다 더 힘든 것 같다"고 썼다.

그러면서 "못된 대기업의 횡포에도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억지로 참고 근무하는 근로자들을 위해서라도 블랙기업 운동이 제발 공론화됐으면 한다"고 염원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블랙기업들의 부당행위는 업체 규모나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임금체불, 부당해고 같은 위법사항 외에도 계약직, 인턴 등 불안정한 지위를 이용해 강제로 영업실적을 채우게 한다든가 수당 없는 야근을 일상화하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정 국장은 "특히 신입이나 입사한 지 얼마 안된 사원들은 사내 지위상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만 둘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며 사회적 약자인 구직자와 청년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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