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기준'도 없는 소방관 방화복…"보기 괜찮으면 입는다"

'폐기 기준'도 없는 소방관 방화복…"보기 괜찮으면 입는다"

남형도 기자
2015.03.22 06:03

특수방화복 '사후 검사체계' 전무, 내구연한 3년 지나도 입어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7지구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7지구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화재 진압 시 소방관들이 입는 특수방화복의 관리체계가 주먹구구식인 것으로 나타났다. 방화복을 입고 세탁 할 수록 성능이 떨어지지만, 구매 후 검사체계가 전무해 현재 상태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또 내구연한 3년이 지나더라도 별도 폐기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소방관들이 육안으로 보고 괜찮으면 그냥 입는 실정이다.

22일 국민안전처와 지자체 일선 소방서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시 입는 특수방화복의 폐기 기준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안전처 고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특수방화복을 사용하다가 육안으로 보고 낡았거나 손상된 것 같으면 소방관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폐기하고 있다"며 "특수방화복에 대한 별도의 폐기기준을 갖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폐기기준이 없어 비전문가인 일선 소방서 직원들이 자체 판단해 특수방화복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 소방서 관계자는 "화재현장에서 훼손돼 못 쓸 정도의 방화복만 모아놨다가 일괄적으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다른 자치구 소방서 관계자도 "약품처리 된 옷이라 많이 빨면 성능이 떨어지는 건 알지만 검증할 수 있는 기관도 기준도 없다"며 "자체 심의해 폐기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준이 방화복의 성능을 판단하기에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육안으로 보기에 괜찮더라도 방화복의 성능이 많이 떨어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별도 손상이 없더라도 세탁을 반복해서 하면 방염성 등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방화복을 처음 납품 받을 때 한국소방안전기술원의 품질검사를 받을 뿐, 구매한 후 사용 과정에서 성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별도의 검사 체계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방화복의 최소한의 폐기 기준인 내구연한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특수방화복의 내구연한은 3년이다. 내구연한은 일반적으로 이 정도 입었을 때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제품을 교체해야 하는 기준이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특수방화복을 입은 지 3년이 지날 경우 교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미"라며 "화재 진압 시 약 500도 이상의 열을 견뎌야하는데 내구연한이 지난 옷을 입으면 기능이 떨어져 소방관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소방서에선 내구연한이 지나도 그냥 사용하는 실정이다. 부산의 한 소방서 관계자는 "조금 못 쓰겠다 싶어서 함부로 폐기하진 않는다"며 "소방관 1인당 2벌씩 돌아가야 하는데 지금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특수방화복의 폐기 기준을 세탁 횟수로 정하고 있다. 제진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미국은 세탁을 몇 번 하면 방화복을 폐기해야 한다고 기준을 분명히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소방관들은 성능을 장담할 수 없는 방화복을 입고 화재 현장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서울 일선 소방서의 한 관계자는 "숨이 턱 막히는 화재 진압 현장에서 믿고 기댈 건 방화복 뿐"이라며 "실제 화상을 입는 동료들도 있는데 못 쓰는 방화복은 제대로 폐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구연한을 분명히 지키고, 구매 후 성능을 검사할 수 있는 '사후 체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방화복을 입는 도중에도 성능을 2~3회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비용 부담은 국고보조를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 교수는 "지자체 예산이 부족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쓰는 실정"이라며 ""내구연한이 지난 방화복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량 교체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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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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