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급등과 공사 지연 리스크가 커지면서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외부 전문가를 통한 사업 관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조합이 직접 시공사를 상대하는 대신 전문성을 갖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를 고용해 협상과 리스크 관리를 맡기는 방식이다. 사업비가 수조원대에 이르는 대형 정비사업을 중심으로 PM 도입이 '주요 옵션'으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용산·강남권 등 핵심 사업지에서 PM 도입이 늘어나고 있다. 한남뉴타운에서는 한남3구역과 한남4구역이 PM을 도입했고 용산 정비창 전면1구역 역시 전문업체를 통해 사업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강남권에서는 압구정3구역과 방배5구역,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등이, 한강변 주요 단지 중에서는 한강맨션이 잇따라 PM을 선임했다. 모두 공사비만 수조 원에 달하는 대형 재건축 프로젝트들이다.
PM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치솟는 공사비다. 최근 몇 년간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인상, 금융비용 확대가 맞물리면서 정비사업 공사비는 가파르게 올랐다.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증액 협상이 반복되며 갈등이 장기화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이중 일부 사업장은 공사 중단이나 법적 분쟁 등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 했다. 갈등 속에 사업이 지연되면서 금융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PM은 이러한 갈등을 사전에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맡는다.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의 적정성을 검증하고 시공사와의 계약 조건을 재점검하며 공사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리스크를 관리한다. 조합 입장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형 시공사와 직접 협상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설계 변경과 하자 보수 문제는 PM 도입 효과가 두드러지는 분야로 꼽힌다. 정비사업 특성상 착공 이후에도 설계 변경이 잦은데 이 과정에서 공사비 증액 요구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PM은 설계 변경의 필요성과 비용 증가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조합과 시공사간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준공 이후 하자 보수 과정에서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분쟁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 같은 흐름 속에 한미글로벌을 비롯해 삼우CM, 무영CM 등 주요 업체들이 정비사업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공공 발주 중심이던 CM(Construction Management, 건설사업관리) 시장이 민간 정비사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향후 도시정비사업 규모가 유지되는 한 PM 수요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CM은 건설사업에 관리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 PM은 정비사업 전반을 관리 대상으로 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다만 PM 도입이 모든 사업장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용역비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업성이 충분히 확보된 대규모 단지나 입지가 우수한 핵심 지역 위주로 PM 도입이 이뤄지는 구조다. 중소 규모 사업장이나 사업성이 낮은 구역은 현실적으로 PM 도입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PM 도입이 정비사업의 '비용 통제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비용 증가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만큼 초기 사업비가 늘어나는 데다 PM의 역할과 책임 범위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과 시공사 간 힘겨루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중재 기능이 사업 안정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PM은 '필요한 비용'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정비사업 시장에 맞춰 비용 부담과 적용 범위 등을 적정하게 관리하려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