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와 전두환,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독재자[우보세]

김태은 기자
2021.11.25 04:30

[the300]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2021.11.24/뉴스1

전두환과 노태우는 신군부 쿠데타의 주역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3개월 후인 1980년 8월 27일 전두환이 대통령이 됐고 노태우는 1988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비록 쿠데타 동지긴 하지만 대통령이 된 방법까지 같지는 않았다. 전두환은 박정희 군부 독재정권 시절 설치된 기구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제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불리는 독재자의 상징이 된 이유다. 이승만이나 박정희조차 형식적이나마 직접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얻는 절차를 거친데 비해 전두환은 독재권력을 수호하기 위한 간선제 대통령을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1987년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는 등 국민들이 요구하는 민주화를 철저하게 거부했다. 그가 군사쿠데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혈진압의 과오와 함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헌정 사상 가장 반민주적인 독재자란 평가를 벗어나기 힘든 이유다.

노태우는 '체육관 선거' 대신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택받는 직선제 대통령의 길을 걸었다. 1987년 6월 29일 국민들이 요구하는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고 그해 겨울 대통령 선거에 민주정의당 대선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6공화국 첫번째 직선제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가 선거구호로 내걸었던 게 '보통사람'이었다.

물론 지난 1996년 전두환이 내란반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을 때 그 역시 반란 공모자로 나란히 중형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 예우도 박탈당했다. 전두환보다 한달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문제는 그에게도 논란거리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고민끝에 전직 대통령으로 대우하는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역사적 과오에 대한 사죄, 추징금을 모두 납부한 부분, 자녀와 부인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해 사죄한 부분을 고려했다"고 설명하면서 전두환의 경우에는 국가장 불가 방침도 분명히 했다.

실제 한달 후 전두환이 사망하자 정부와 여당은 "조문도, 조화도, 국가장도 불가하다"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야당 역시 조문을 삼가며 노태우 조문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단지 역사적 과오에 대한 사죄 문제만은 아니다. 노태우가 전두환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독재자가 아닌 선출 권력으로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인의 국가장을 결정하면서 "국가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며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북방정책이라든가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한반도 비핵화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환점을 만든 공로가 있다"고 소개했다. 노태우정부의 과오와 함께 업적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 정부라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이에 비해 "불법적인 정권 탈취와 광주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면서 전두환 장례와 관련 국가장에 부정적인 입장만을 피력했을 뿐 전두환 정부에 대한 일체 평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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