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종료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복직 신청서를 내라는 회사의 연락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반년이 지나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휴직기간 1년이 그 전의 반년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흘렀다. 화살처럼 지나간 시간 탓에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1년 전의 아이 사진을 보며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새삼 느낀다.
지난해 초에 육아휴직기를 쓰겠다고 하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52주 동안 새로운 얘기를 쓸 게 있을까? 애 키우는 거 맨날 똑같다. 재우고 밥 먹이고 대변 치우고 놀아주고의 반복일 뿐이다."
멀리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은 여러 의미에서 새로웠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바뀌는 아이의 상태와 조건들은 늘 새로운 도전 과제로 다가왔다. 1년 전 집안에서만 기어 다니던 아이가 이제는 온 동네를 뛰어다닌다. 배고프고 아프거나 졸릴 때만 울던 아이가 이젠 고집도 부리고 생떼를 쓴다. 태어날 때 50㎝도 안 되던 키는 어느새 80㎝를 넘어섰다. 3.5㎏으로 태어난 아이가 이제 13㎏에 육박한다.
1년 동안 자주 아프기도 했다. 생전 처음 소아 응급실도 다녀오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콧물과 변비, 고열에 가슴을 졸였다. 분유를 먹인 뒤 트림시키는 데서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젠 혼자 냉장고 문을 열고 사고를 친다. 딸랑이 흔들고 모빌 틀어주면 웃던 아이가 이젠 어설프게나마 블록 장난감을 조립하며 논다.
힘든 일만 있던 건 아니다. 서서히 말문이 트인 아이는 이제 우렁차게 "아빠!" 소리를 외치며 달려든다.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현관 펜스에 달라붙어 아빠를 마중 나온다. 맛있는 걸 먹이면 꼭 부모 입에 한 번씩 넣어준다. 벗겨낸 기저귀를 돌돌 말아서 주면 혼자서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모습도 기특하다. '지지' '빠방' '맘마'처럼 새로운 단어를 말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휴직에 들어가기 전에는 여러 가지 다른 계획도 있었다. 아이를 24시간 보는 게 아닌 이상 회사 다니며 처리하기 힘들었던 개인적인 일들을 소화하고 싶었다. 아내와 번갈아 아이를 보기로 약속하며 '나머지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1년이 지나고 보니 그리 많은 걸 이루진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직접 보지 않는 시간에도 육아의 끈을 놓지 못했다. 부모 중 한명이 아이를 돌볼 때 다른 한 명은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피곤함에 절어 낮이건 밤이건 단잠을 잤다. 아이가 이앓이를 하거나 열감기를 겪을 땐 밤에 깊은 잠도 못 자다 보니 낮에도 반쯤 눈이 감긴 채 지냈다. '개인 시간'은 무리한 욕심이었다.
그나마 남는 기간들을 활용해 회사 다닐 때는 처리하기 힘든 몇 가지 병원 진료를 받고 수년간 묵힌 개인 과제 한두 가지를 해치웠다. 휴직 전에는 "혹시 아르바이트라도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전혀 여유가 없었다. 육아휴직은 말 그대로 대부분의 시간을 육아에 전념해 아이에게 헌신하며 지낸 기간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에 맞춰가며 정신없이 지낸 1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40여년 인생의 모든 시기 중 가장 행복했다. 순수하게 날 좋아해 주는 내 자식과 이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아이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이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일반적인 사기업 직장인 입장에서 아이와 온전하게 1년을 함께 보낼 기회는 흔치 않다. 아이와 부모의 애착 형성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결정적 시기'인 6개월~2세 시기에 아이 옆을 지켰다는 점도 매우 뿌듯하다. 다만 올해 8월부터 도입되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의 방학에 맞춘 '단기 육아휴직'을 앞으로 쓸 수 없는 점은 못내 아쉽다. 기존 육아휴직 기간에서 차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1년간 온전히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던 모든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1년 동안 눈에 담긴 아이의 예쁜 짓은 평생 못 잊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기들이 어릴 때 평생 할 효도 다 한다"고 했던가. 딸이 언젠가 사춘기도 겪을 테고 성장하면서 속 썩이는 일들이 숱하게 생길 것이다. 육아휴직 1년 동안 충전된 행복은 분명히 그 힘든 시기를 인내하며 지혜롭게 헤쳐 나갈 '선불 카드'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