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분식' 짊어진 KAI의 피곤한 비행

김훈남 기자
2017.09.26 04:29

2012년 초 자원외교 수사가 한창일 때의 일이다. 모 상장사에 대해, 수사당국 관계자가 "또 몰라, 지금 사두면 재미볼지도"라며 농담 섞인 한마디를 던졌다.

압수수색과 해외도피 중인 대표이사 탓에 동전주로 전락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공교롭게도 2년 뒤 대표이사의 귀국소식에 이 회사 주가는 10배 가까이 상승했다. 물론 그 끝은 상장폐지였지만.

최근 한국항공우주(KAI)를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5년 전 자원외교 수사와 이번 방산비리 수사 면면이 겹쳐 보이는 탓이다.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수사. 서초동서 날아온 한마디에 주가는 급락한다. 금융당국은 질세라 특별감리 방침을 밝혔다. 분식회계 이슈에 채권 딜러와 애널리스트는 눈길을 거뒀다. 이제 불안한 건 개미들이다.

악재 기사에 '공매도 세력의 앞잡이'라는 등 투자자들의 항의성 메일과 댓글이 달린다. 의혹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때도 손해 보는 건 타이밍을 놓친 개미들이다.

8월 이후 한국항공우주 역시 이 공식에서 한치 벗어남이 없다. 분식회계 수사 공식화에 30% 가까이 빠진 주가, 더 이상 제3자가 아니게 돼버린 외부감사인 삼일회계법인의 반격에 주가 반등. 상승세를 보이던 주가는 전 경영진 구속으로 다시 한 번 불확실성 앞에 섰다.

한국항공우주에 대해 꾸준히 보고서를 낸 모 애널리스트는 "그래도 국가 기간산업을 하는 회산데 이렇게 무너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문제가 된 분식회계 규모는 1000억원 안팎이다. 시가총액 4조원대 상장사가 아직 '의혹'인 1000억원에 흔들리는 모양새를 짚은 말이다.

원가 부풀리기와 배임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엄단 필요성은 말할 게 없다. 그게 시장질서를 무너트리는 '분식'이라는 수단을 동원하고, 경영진 개인의 연임이라는 '사욕'을 위한 것이라면 더 엄히 처벌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분식회계 이슈 이후 피곤한 비행 중인 주가와 그에 일희일비하는 투자자들의 반응을 보자니, 수사·금융당국의 거친 일 처리와 분식회계 이슈에 대한 투자자 보호장치에 대한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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