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명함은 앞면 말고 뒷면을 봐주세요."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은 인사말을 이렇게 시작한다. 명함 뒷면엔 '농어촌·농어민이 잘 살아야 대한민국이 강한 나라가 된다'고 적혀 있다. 그의 사무실인 의원회관 336호에도 같은 문구가 걸려 있다. 농민이 되기 싫어 고향을 떠났지만 '농민의 아들'이란 피는 속일 수 없었다. 그는 두 번의 국회의원을 지내며 단 한 번도 상임위원회를 바꾸지 않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옛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농어민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
【대학교 1학년, 신민당에서 꿈꾼 정치】
그가 정치에 발을 들인 건 건국대학교 농과대 1학년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법학가이자 소설가였던 고려대학교 유진오 박사의 철학강의를 들은 게 계기가 됐다. 1967년 신민당 대표위원이 된 유진오 박사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자 그는 유 박사의 선거운동원이 된다. 여의도에 입성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는 1988년 치른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청양·홍성지역에 처음 출마한다. 그러나 첫 당선은 2004년 실시된 17대 총선이었다. 처음 출사표를 던진 지 무려 16년 만이었다. 시련 속에서도 그는 탈당한 사람들이 빠진 뒤 남은 인원으로 '꼬마 민주당'을 두 번이나 만들며 고집스럽게 버텼다.
【키워드→농민의 아들】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답리에서 태어난 소농민의 아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일컫는다. 어린 시절에는 농사꾼이 되는 것이 싫어 무작정 상경했지만 뿌리는 농촌이란 사실을 되새기며 산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라는 한 상임위만 고집하는 이유도 그렇다. 17대 때는 농어업대책특위를 맡기도 했다.
그가 직접 발의해 국회를 통과한 법 가운데 가장 보람을 느낀 법도 '면세유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과 '농기계임대법'(농업기계화 촉진법 개정안)이다. '면세유법'은 농사를 지을 때 일반석유의 3분의2 가격인 면세유를 사용해 농사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기본 1000만원대를 호가하는 값비싼 농기계를 구입해도 정작 1년에 열흘 남짓 사용하는 점을 감안, 농기계를 임대해 쓸 수 있는 '농기계임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농기계 구입은 그동안 농가부채의 대표적 원인으로 지적돼왔다.
【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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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경력만 훑으면 여느 중진급 의원 못지않다. 17대 국회에선 유일한 충청권 한나라당 의원으로 '태안유류오염사고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협상을 이끌었다. 초선에겐 이례적인 일이었다. 19대 국회에선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아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 통과시켰다. 인지도가 화려한 경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여의도 입성이 늦은 탓에 연륜에 비해 낮은 선수도 단점이다.
【프로필】
△1947년 충남 홍성 출생 △한영고 졸 △건국대 농화학과 졸 △한양대 행정대학원 졸 △국회의장 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17·19대 국회의원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위원회 인수위원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대한하키협회장 △19대 국회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박다해 기자 do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