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 합헌 결정이 내려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안'(성매매특별법)의 시초는 5·16 군사정권이 1961년 제정한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다. 이 법 4조는 '누구라도 윤락행위를 하거나 그 상대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를 어길 경우 3만환(당시 3000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졌다.
이 법은 광복 후 미 군정청이 공창제 폐지령을 공포한 뒤 제정됐다. 공창제 폐지로 인해 '미아리 텍사스촌'과 '청량리 588번지' 등 사창가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정권은 성매매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성매매 여성들을 시설에 강제 수용시키거나 직업훈련에 참여하게 했다.
그러나 1995년 경기여자기술학원에 수용된 성매매 여성들이 탈출을 목적으로 학원에 불을 질러 53명이 죽거나 다친 사건을 계기로 법률은 전면 개정됐다. 1995년 개정된 법은 희망자만 시설에 입소시키고 개인 인성변화에 초점을 맞췄으나 예산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2001년 여성부가 출범하면서 인신매매와 폭행 등에 노출된 성매매 여성들의 실태가 알려졌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 이에 따라 성매매특별법 제정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2002년 7월 조배숙 의원 등 74명은 강요로 인해 성매매한 자는 피해자로 보고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철회했다. 이후 조 의원 등은 강요 여부와 상관없이 성매매에 나선 자의 사회복귀를 돕는다는 취지로 같은해 9월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004년 성매매특별법으로 제정됐다.
제정 후 이 법과 관련해 헌법소원이 7번 제기됐다. 성매수남, 성매매업주와 성매매업소에 공간을 제공한 건물주 등이 위헌 여부를 물었지만 헌재는 모두 각하하거나 합헌 판단했다.
2004년 3월 성매매특별법 제정된 직후 성매수남 최모씨는 "아내에게 성불감증이 있어 성매매로 욕구를 해소해 왔다"며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 법 시행과 당사자들의 기본권 침해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며 각하했다.
2005년 스포츠마사지 업소 업주 김모씨가 성매매 단속 때문에 가게가 고사할 지경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김씨는 "대다수 남성의 기본 욕구를 억압하고 성매매 종사자들이 직업을 선택할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잇따라 각하되거나 기각되자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지난해 한터전국연합 등 성매매종사자 모임 소속 1000여명은 서울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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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서 이들은 "성매매 특별법은 소수 약자인 집창촌 성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을 위협하는 악법"이라며 "생계형인 집창촌이 법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성매매에 거액이 오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매매 여성을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번에 큰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나서는 여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엔 유명 여가수가 미국에서 사업가에게 3500만원을 받고 성매매한 혐의로 약식기소되자 이같은 목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