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으로 은행에 묶인 돈, 돌려받기 힘들다

해킹으로 은행에 묶인 돈, 돌려받기 힘들다

정현수 기자
2014.12.10 05:30

지급정지되더라도 환급절차 복잡하고 시간 오래 걸려…보이스피싱은 법적으로 환급절차 마련돼

박모씨는 지난 7월8일 자신의 농협 계좌에 있던 1835만원이 깜쪽 같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예금은 총 3차례에 걸쳐 각각 다른 은행의 대포통장으로 흘러갔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적은 없었다. 해킹에 의한 전형적인 금융범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부 자금이 지급정지됐다는 점이다.

박씨 예금이 흘러들어간 A은행의 신속한 판단이 빛났다. A은행은 박씨의 거래가 의심스럽다고 판단해 곧바로 지급정지 결정을 내렸다. 그 금액이 615만원이다. 다른 은행으로 이체된 나머지 1220만원은 이미 인출된 상황이었다. 박씨는 A은행을 방문해 무단이체된 자신의 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A은행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아직까지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전자금융범죄 피해보상 절차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농협에서 발생한 1억2000만원 규모의 무단인출 사고와 같이 해킹에 의한 사고로 규명될 경우 피해보상 절차는 더욱 복잡해진다. 더욱이 이상거래로 판단돼 지급정지된 돈은 쉽게 돌려받지도 못하는 구조다. 현행법상 돌려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소송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2011년 도입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은 "금융회사는 지체 없이 피해환급금을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채권소멸절차 등을 거쳐 통상 2개월 후 환급된다. 하지만 특별법의 적용대상은 보이스피싱과 파밍 등에 한정된다. 그나마 최근 대출사기도 특별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 해킹에 의한 피해는 특별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망과 공갈에 의해 발생한 문제는 구제하는 절차가 있지만 해킹의 경우 기망과 공갈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결국 부당이득 반환소송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환급을 받을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최근 보험사의 구상처리 절차가 생겼지만 해킹으로 발생한 피해는 결국 소송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물론 은행으로서도 현실적인 고민은 있다. 현행법상 자금 이체가 이뤄지면 해당 자금의 소유권은 이체된 예금주로 넘어간다. 해킹에 의한 무단이체라고 판단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신속한 환급이 이뤄질 경우 이를 악용하는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게 은행쪽의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텔레뱅킹 해킹에 의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해킹으로 피해를 봤더라도 해킹이 아니라 보이스피싱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특별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보이스피싱에 의한 피해가 많았기 때문에 보이스피싱을 중심으로 구제절차가 마련됐다"며 "최근 불거진 텔레뱅킹 무단인출 사고가 신종수법으로 확인될 경우 구제절차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정현수 기자

머니투데이 경제부 정현수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