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모양 집 아세요?"…호기심 많던 소년의 꿈

"변기모양 집 아세요?"…호기심 많던 소년의 꿈

진경진 기자
2015.02.24 06:05

[피플]건축가 고기웅 'OFFICE 53427' 대표

/고기웅 'OFFICE 53427' 대표
/고기웅 'OFFICE 53427' 대표

호기심 많던 초등학교 3학년 소년은 매일 학교가 끝나면 세들어 살던 2층 집 테라스를 찾았다. 바로 앞 맞은편에서 공사가 한창이던 주택이 조금씩 올라가는 모습이 신기했고 구경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른이 되면 꼭 집을 짓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건축가’라는 직업이 자리를 잡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부모님은 집 짓는 일은 ‘노가다’라며 그를 말렸다.

자라면서 어느 순간 잊혀진 꿈이었지만 대학진학 때 자연스럽게 건축학과를 택했다. 고기웅 OFFICE 53427 대표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찾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좁고 경사진 골목에 새하얀 건물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논현로151길 39(신사동 561-1)에 자리잡은 OFFICE 53427 건물이었다. 운동화가 아니면 걷기도 힘든 비탈길, 145㎡ 규모의 부채꼴 모양 자투리땅에 고 건축가가 직접 설계해 건물을 올렸다.

고 대표는 ‘변기모양 주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세계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을 지낸 고 심재덕 국회의원이 그를 찾아 자신의 집을 화장실 모양으로 지어달라고 주문한 뒤 정말 황당하게도 변기모양 주택이 탄생했다. 해외토픽에도 수 차례 소개된 이 건물은 현재 경기 수원시에 기증돼 화장실문화 전시관으로 활용된다.

아직까지 국내에선 개인적으로 건축사무소를 찾는 일이 일반적이진 않다. 건축가를 찾을 때는 더 거창하고 규모가 큰 건물이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고 대표는 “우리나라는 소득수준에 비해 건축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 편”이라며 “집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보통인데 자신이 어떤 공간에 사는지에 따라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그를 찾아온 의뢰인이 기억에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출가한 자녀들이 70대 노모를 위해 충남 아산에 50㎡ 규모의 작은 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는 “작은 집이고 적은 예산이었지만 좋은 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건축가를 찾아왔다는 게 감사한 일”이라며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평생 한 번 있기도 힘든 일임에도 적지 않은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건축가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공공기관이나 주거용아파트 설계에 해외 건축가들이 대거 참여하는데 대해선 나름의 의견을 피력했다.

고 대표는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이화여대 ECC(Ehwa Campus Complex),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은 논란이 있긴 하지만 건축가 본인만의 아이디어와 역량이 반영된 작품임은 분명하다”며 “국내 건축가들도 그들과 경쟁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설계기술이 발전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했다.

다만 유명 디자이너가 아파트설계와 디자인에 참여하는 일명 ‘디자이너스 아파트’의 경우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그는 “해외 유명 건축가들을 영입했을 땐 많은 비용을 치른 만큼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하지만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주거시설은 큰 변화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어려워 우리나라에선 아이디어가 아닌 이름만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식에 그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제 40대 초반인 그는 도전하고 싶은 영역도 많다. 특히 요즘엔 수도 서울에 대한 연구에 한창이다. 고 대표는 “이 도시를 어떻게 사용하고 만들어왔는지 역사적인 데이터를 보면서 앞으로는 어떻게 사용할지를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조사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앞으로 한 5년, 10년 정도 비전을 갖고 생각을 해보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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