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경제' 이끌 신기술]제러미 리프킨, 자본주의+협력적 공유경제…한계비용 제로 혁명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2014년에 펴낸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책에서 19세기 초에 출현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후 처음으로 '협력적 공유사회'라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등장했다며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유경제가 뒤섞인 '하이브리드(잡종) 경제'가 이미 출현했다며 2050년 무렵이면 공유경제가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리프킨은 공유경제가 '한계비용 제로 혁명'을 이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화나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져 상품 가격도 거의 공짜가 돼 가고 있다는 말이다. 파일 공유 서비스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음악이나 동영상, 위키피디아의 지식, 온라인 뉴스 등 공짜 콘텐츠의 확산은 이미 기존 산업을 뒤흔들었다. 세계 유수 대학이 제공하는 개방형 온라인 강좌에서는 석학들의 강의를 공짜로 들을 수 있다. 리프킨은 특히 통합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사물을 모든 사람과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공유경제를 가속화할 것으로 봤다.
리프킨이 말한 '하이브리드 경제'는 결국 소유권 중심의 교환가치(자본주의)가 접근권 중심의 공유가치(공유경제)로 바뀌는 대전환을 의미한다. 문제는 당분간 이 대전환과 기존 산업과의 불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과거에 자동차를 소유했던 이들이 차량 공유 어플리케이션(앱)인 '우버'에 접속해 차를 이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우버는 설립 6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상장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으로 부상했다. 현재 추진 중인 21억달러 규모의 추가 자금조달이 성공하면 우버의 몸값은 625억달러로 불어나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의 시가총액을 웃돌게 된다.
숙박공유 서비스업체인 에어비앤비는 기업 가치로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인 힐튼을 위협한다. 에어비앤비는 지난 6월 마지막 자금조달 때 255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리프킨은 2012-2013년에 에어비앤비를 통해 미국 뉴욕의 아파트나 주택을 이용한 사람이 41만6000명에 달했다며 이는 뉴욕 호텔업계가 1박 기준으로 약 100만개의 룸을 채우지 못하는 손실을 입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리프킨은 최근 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성장 둔화도 시장의 교환가치가 공유가치로 바뀌는 대변혁과 무관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재화 및 서비스 생산의 한계비용이 제로로 수렴하는 부문이 하나둘 늘면서 이윤이 줄고 GDP(국내총생산)가 위축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계비용 제로 현상으로 재화나 서비스가 거의 무료가 되면 소비 역시 감소해 GDP가 준다.
리프킨은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사서 쓰던 재화를 공유경제에서 재분배받아 재활용하게 된 것도 GDP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재화의 사용주기와 함께 구매주기가 길어지면서 GDP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로봇공학과 인공지능(AI)이 노동자를 대체하면서 소비자의 구매력이 약해지고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가 급증한 것도 성장 둔화를 촉진한다고 리프킨은 지적했다. 그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에 달하는 프로슈머들이 직접 자신이 쓸 녹색 전기를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10만명에 달하는 취미생활자들이 3D(3차원) 프린터를 이용해 역시 제로 수준의 한계비용으로 자신이 사용할 재화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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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킨은 이런 변화로 향후 몇년, 어쩌면 수십년 동안 전 세계 GDP가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그는 협력적 공유사회에서는 경제적 성과가 시장적 자본의 축적이 아닌 사회적 자본의 집약으로 측정될 것이라고 했다. 경제적 성과 또는 풍요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리프킨은 유럽연합(EU),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와 일부 선진국, 개발도상국들이 이미 경제적 산물의 양보다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교육수준, 의료서비스 편의성, 유아사망률, 기대수명, 환경, 부의 분배 수준 등이 대표적이다.
리프킨은 아울러 모든 게 무료에 가까워지면 새로운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고 혁신을 추진할 동기가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경제학자들의 의심은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미 수백만에 달하는 프로슈머들이 공유사회에서 자유롭게 협력하며 20세기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경험한 것 이상의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협력적 공유사회에서는 금전적 보상에 대한 기대보다는 인류의 사회적 행복을 증진하려는 욕망이 혁신과 창의성을 자극한다고 봤다.
리프킨은 역사상 거대한 경제혁명이 '인프라(기반시설) 혁명'이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3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사물인터넷(IoT) 환경을 구축하는 데 1, 2차 산업혁명 때처럼 막대한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세계 경제 전반에 엄청난 승수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프라 투자로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생기면 구매력을 자극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할 수 있고 이는 또다시 추가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리프킨은 그러나 인류가 협력적 공유사회를 통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풍요를 위협하는 예측 불가능한 요인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꼽은 2개의 변수는 기후변화와 사이버 테러다. 리프킨은 산업화에서 비롯된 기후변화는 생태계와 인간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고 있으며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은 공유경제의 근간인 사물인터넷 인프라를 위협해 현대 문명의 붕괴라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러미 리프킨은?
제러미 리프킨(70)은 미국의 경제사회학자로 과학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해왔다. 주요 저서로 '3차 산업혁명'(2011) '수소혁명'(2002)' '소유의 종말'(2000) '바이오테크 시대'(1998) '엔트로피'(1980) 등이 있다. 현재는 자신이 설립한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FOET) 이사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