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사업 확대 '난산' 창업정신과 불일치 지적

휴렛팩커드(HP)가 PC 사업을 털어내기로 한 것은 회사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를 통해 회사를 혁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HP가 애초에 PC 회사가 아닌 데다 1990년대 이후 PC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적잖게 있었던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이 전하는 HP의 숨겨진 역사를 통해 이를 조명해 본다.
◇1938년 창업.. PC가 뭐야?= HP는 공동 창업주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1938년 창업했다. PC가 없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초기 HP는 오디오 진공관을 개발해 히트를 쳤고 전자 검사·측정 장치를 주로 생산했다.
실제로 두 창업주는 전문가용 장비 개발과 생산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처럼 소비자용 PC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업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HP가 첫 PC 양산 기업이 될 기회를 걷어찬 측면도 있다.
1970년대 한 젊은이가 가정용 컴퓨터를 개발했다며 그 물건을 사달라고 HP를 찾아왔다. 스티브 워즈니악이었다. 그러나 HP는 이 제안을 거절했고 이후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다.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창업했고 애플이 PC 분야 선구자가 된다.
IBM이 1981년 개인용 컴퓨터를 선보이며 PC시장을 주도하자 HP는 뒤늦게 여기에 합류했다. 데이비드는 1990년대 초 마지못해 PC 사업 확대에 동의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워즈니악을 돌려보낸 결정에 대해 한 번도 후회를 비치지 않았다. 전기작가이자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인 조지 앤더스가 쓴 전기 '퍼펙트 이너프'에 따르면 데이비드는 뿐만 아니라 평생 다른 전자장비에 비해 PC를 좋아하지 않았다.
◇컴팩 합병, 창업주 아들vs피오리나= HP와 PC 사이에 또 한 번의 '악연'은 2000년대에 찾아온다. 데이비드 팩커드가 1996년, 빌 휴렛이 1998년 잇따라 사망한 이후다.

1999년 HP는 '포춘'의 '미국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인'(98년)에 뽑힌 재계의 스타 칼리 피오리나를 CEO로 전격 영입한다. HP 사상 최초의 CEO 외부 영입으로 성장 동력이 떨어진 시점에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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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리나는 2002년 컴팩을 합병, HP를 PC업계 1위로 발돋움시키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일부 주주들은 컴팩 합병을 맹렬히 반대했는데 그 선봉에 선 인물이 빌 휴렛의 아들인 월터였다.
월터는 PC 사업 마진이 적다며 피오리나 측을 거세게 공격, 4개월간 공방 끝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자 회사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월터는 창업주의 아들임에도 이사회에서 쫓겨난다.
피오리나의 승리로 평가되는 이 사건 이후 HP는 PC 분야에서 승승장구했지만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중심으로 IT 업계의 축이 옮겨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 결국 현 CEO인 레오 아포테커는 PC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MIT 슬론스쿨(MBA)의 마이클 쿠수마노 교수는 "아시아의 경쟁자들로 인해 PC 분야 수익에 경고등이 켜졌고 최근 비즈니스 환경에서 PC는 혁신이 일어나는 분야도 아니다"며 "지금의 PC와 같은 대량 소비자상품 제조는 HP의 DNA에도 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쿠수마노 교수는 "레오 아포테커 CEO가 창업주들의 철학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라며 "HP는 스스로를 재혁신할 역량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