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은 왜 주로 남자 아이일까

게임중독은 왜 주로 남자 아이일까

박창욱 기자
2012.03.07 09:03

[컬처 에세이]게임업체에 보다 큰 사회공헌을 요구하자

#. 다섯 살짜리 아들 녀석은 요즘 '꼬마버스 타요'에 푹 빠져 있다. 타요는 버스를 의인화한 아동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이다. 아들은 그냥 놔두면 타요를 두 어 시간은 족히 본다.

그래서 요즘엔 타요를 보여 달라고 할 때면, 아예 처음부터 몇 편 볼 건지 미리 합의한다. "몇 개 볼 거야"라고 물으면 보통 "세 개"라고 한다. 그럼 세 편을 다 볼 때까지 일단 기다려 준다.

약속된 세 편이 끝나면 아들은 보통 더 보겠다고 떼를 쓰거나 '아앙~'하며 애교를 부린다. 아직 어린 아이라 너무 야박하겐 굴진 않는다. 다짐을 받고 한 편 정도 더 보는 건 그냥 봐준다. 덤이란 게 있으니. 그걸 다 보고 나서도 계속 우기면 그때부턴 정색하고 이야기한다.

"아까 아빠랑 이만큼만 보고 끈다고 약속했어, 안 했어?"

"했어."

"약속 안 지키면 나쁜 거야,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그럼 약속 지켜야겠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네…"

아들이 일단 수긍하면 리모콘을 주면서 제 손으로 끄라고 시킨다. 녀석이 전원 버튼을 누르면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와, 약속 지켰네. 좋은 어린이네." 어려서 아직까진 이런 식으로 '꼬시는' 일이 그리 어렵진 않다. 하지만 머리가 더 커서 만화가 아니라 게임에 맛을 들이면 녀석과 어떤 전쟁을 벌이게 될까 벌써부터 두렵다.

#. 주위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게임에 푹 빠지는 건 주로 남자 아이들이다. 여자 아이들도 게임을 하긴 하지만 남자 아이들처럼 '중독' 수준까진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김정운 교수가 쓴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을 읽고선 나름의 힌트를 찾아냈다.

전통적으로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정서적 표현이 억압된다. 울면 우는대로,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사내 놈이…"라며 야단을 맞는다. 그나마 예전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공 하나로 서로 몸을 부딪히면서 정서를 순화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그마저도 할 시간이 없다.

여자아이들이 활발한 감정 교류를 할 동안, 정서적 표현이 억압된 남자 아이들은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서 '희노애락'을 느끼고 스트레스도 푼다. 따라서 남자 아이들이 게임을 못하도록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며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게임에 과하게 빠지지 않도록 하려면 감정을 분출할 다른 통로를 만들어주는 방법밖엔 없다. 특히 어릴 때부터 사내자식이라는 이유로 정서를 억눌러선 안 된다. 아이들의 말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감해줘야 한다.

그러면 아이 마음속에 게임이 자리 잡을 공간이 줄어들게 되고, 공부에 지장 받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하는 일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누구나 거치는 또래 문화라면 무조건 억누르는 게 능사가 아니다.

#.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셧다운제'나 '쿨링오프제' 등 게임을 못하게 직접 제한하는 법은 해당 업계의 반발만 살 뿐,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신 게임업체에 당당하게 요구하자. 청소년 덕분에 큰 돈을 벌었다면 바람직한 청소년 문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더 많이 사회에 내라고 말이다. 보통 상품에도 제조물 책임이란 게 있는데, 하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해외에서 외화를 많이 벌고 있으니 우리를 건드리면 안 된다"라는 게임업체들의 항변은 80년대식 구닥다리 사고방식일 뿐이다. 게임업체들은 비약적인 성장속도에 비해 사회공헌 의식이 아직도 미약하며, 사회공헌 규모도 다른 산업에 비해 취약하다고 여러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다양한 법적·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게임 규제에서 핵심 키워드는 '사회적 책임'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