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저질식품 10초면 청정식품으로 '둔갑'

수입 저질식품 10초면 청정식품으로 '둔갑'

황보람 김평화 한보경 기자
2013.03.27 06:25

[4대악 근절-밥상위의 공포 '불량식품']<4-1.끝>'박스갈이·포대갈이' 유통중 원산지 바꿔치기

 박근혜 대통령이 처단해야 할 4대악으로 지정한 '불량식품' 단속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유통과정에서의 '둔갑'이다. 제품을 수입하는 단계에서 철저히 검역이 이뤄지더라도 유통과정에서 원료나 원산지 표시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수입산 저질식품이 한순간 '국산 명품'으로 둔갑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량식품 제조만큼이나 원산지 허위표시나 저질식품 바꿔치기 같은 '유통과정'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경찰청이 지난 1월21일부터 한 달 동안 실시한 부정·불량식품 특별단속을 통해 검거한 569명 중 유통관련 사범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비닐하우스나 창고에서…원산지 둔갑 10초면 충분

 최근 찾은 서울 관악구 난곡동의 한 시장에서는 거의 모든 상품에 원산지 표시가 돼 있었다. 시장의 한 채소가게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에는 대부분 '국내산' 푯말이 붙어 있었다. 세척당근, 세척생강을 제외하면 흙연근, 흙당근, 표고버섯, 간마늘, 대파, 양배추, 저장무 등 40가지 채소 중 38가지는 '국내산'이었다.

 가게주인 장모씨(38)는 "여기서 파는 것들은 가정집에서 쓰는 만큼 신경써서 사가는데 식당은 95% 이상이 수입산을 쓴다"고 귀띔했다. 장을 보던 4년차 주부 최모씨(33)는 "중국산은 왠지 찝찝하다"며 "국산은 우리 땅에서 나니까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2008년 6월 원산지표시제도가 음식점까지 확대되면서 94%가 표시의무를 지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됐는지는 다른 문제다. 원산지 허위표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부산 동래경찰서는 생산된 지 3년이 지난 묵은쌀에 찹쌀 소량을 섞어 유명 브랜드 햅쌀로 둔갑시켜 판매한 최모씨 등 양곡업자 3명을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최씨 등은 2009년에 생산된 묵은쌀 20㎏에 찹쌀 한 주먹을 섞어 '햅쌀'이라고 쓴 포대에 담는 '포대갈이' 수법을 썼다. 이렇게 묵은쌀 160포대는 경북지역 유명 브랜드 이름을 달고 '명품쌀'로 팔려나갔다. 지난해 9월 대전에서 적발된 고춧가루 식품업자의 경우 국내산 고춧가루에 중국산과 베트남산을 50%가량 섞어 계룡대 구내식당 등에 납품한 혐의로 붙잡혔다.

 포대 형태로 섞여 있는 낱알식품의 경우 소비자들이 원산지 허위 표시 여부를 알아채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산 쌀이나 소금, 고춧가루 등이 쉽게 국산으로 둔갑되는 이유다.

 이렇게 '포대갈이' '박스갈이' '통갈이' 등 겉포장만 바꾸는 단순한 작업으로도 원산지는 쉽게 속일 수 있다. 수입 당시 검역과 통관단계에서 철저히 원산지가 표시되더라도 유통단계에선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산지관리과 이호열 기동반장은 "국내 생산량이 줄어들어 수급조절이 어려운 경우 중간판매 과정에서 원산지를 속이는 일이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작황이 좋지 않아서 국내산과 수입산의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경우 유통업자들의 눈속임이 빈번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쌀, 쇠고기, 돼지고기, 김치 등 소비가 많은 6개 관심품목은 1년 내내 단속을 벌인다. 태풍 같은 자연재해 등으로 국내산의 가격이 급등한 경우 1년에 15~18차례에 걸쳐 해당 품목에 대해 특별단속을 실시한다.

 이 반장은 "전국 117만곳이 단속 대상인데 1년에 34만~35만곳 정도에 단속을 나간다"면서 "이중 한 해 4000건 정도가 적발돼 많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저질 수입식품 유통업자도 강도 높은 처벌해야

 더 큰 문제는 노련한 주부나 시장상인이라고 하더라도 원산지를 속인 제품을 판별해내긴 어렵다는 점이다.

 동작구의 한 마트에서 생선을 파는 김모씨(51)는 "국내산이 없을 때만 수입산을 가져온다"며 "사실 우리도 국내산과 수입산을 눈으로 봐선 구분 못한다"고 털어놨다. 전복을 사러 왔다는 박금자씨(44)는 "수입산은 못믿어 국내산을 산다"면서도 "국내산과 수입산이 비슷비슷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국산에 대한 불신 때문에 국산을 찾고는 있지만 정작 구별하지는 못하는 셈이다. 얌체 유통업자들은 이런 점을 노리고 저질식품을 국산 먹을거리로 위장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지현 박사는 "수입업자들은 가격 때문에 중국에서도 위생시설을 갖추지 않은 무허가업체 등에서 품질이 나쁜 것을 들여온다"며 "수입 농산물의 30% 이상이 중국산이며, 당근 쌀 소금 등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최 박사는 "현 정부에서 불량식품 근절을 내걸고 '제조업자' 단속에 초점을 맞추는데 '유통업자, 수입업자'도 높은 수준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을 위반할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실형보다 벌금형을 받는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불량식품 근절을 위해 처벌을 강화한 '최저형량제', 부정이익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이익몰수제', 불량식품을 판매한 업체를 공개하는 '블랙리스트제'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박사는 수입식품 유통업자들의 허가를 '신고제'가 아닌 '등록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통업자들의 등록을 전산화하는 등 철저한 관리로 상당수 위법행위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도 원산지 허위 표시를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권훈정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단순히 원산지로 구분지어 영양분 차이를 논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답했다. 안전성이나 위험성은 잔류농약이나 오염물질 분석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 국내산과 중국산의 차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재배지역에 따라 영양분이나 식품안전도에 차이가 있는데 국가별로 한정짓고 위해식품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면서 "결국 중국산 중에서도 어떤 품질을 수입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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