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까지만 해도 비오는 날 장화 신은 사람들을 보면 '유별나다'고 생각했던 지은씨는 올해 '장화 대열'에 합류했다. 운동화 몇 켤레로 장마를 버텨보려 했지만 8월까지 큰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비 피해에 대비하기로 했다. 그는 "예전에는 장마기간 동안만 집밖에 나가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그러다간 여름 내내 갇혀 지낼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17일 중부지방에서 시작된 장마가 한 달이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은 "장마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입장을 되풀이 한다. 2009년부터는 기상청은 아예 장마의 '시작과 끝'을 예보하지 않고 있다. 장마가 끝나도 국지성 호우 등 많은 비가 예상돼 사실상 '장마기간'이 무의미해 졌기 때문이다.
◇'고온다습' 한반도, 아열대성 기후로 편입됐나?
장마에 사실상 '끝'이 사라지면서 우리나라도 '우기'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조석준 기상청장은 한 인터뷰에서 "최근 5년 간 장마 개념이 무색할 정도로 7월보다 8월에 강우량이 더 많은 분포를 보였다"며 "앞으로는 장마기간이 특별한 의미가 없어짐에 따라 6~8월을 우기로 분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장마기간과 간절기의 '실종' 등 기후 변화가 '한반도의 아열대화'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주장한다.
보통 온대기후 지방에서는 6월 말부터 한달 동안 장마가 지속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 대 들어 8월과 9월에 '가을장마'를 치르는 등 아열대성 강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봄·가을의 '실종'도 아열대화의 단면이다. 산업혁명 이후 100년 동안 전 세계 평균기온은 0.74도 상승했다.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1.7도 더 뜨거워졌다. 이에 따라 길어진 여름 탓에 간절기는 사라지고 있다.
기상학자들은 2070년 이후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완전히 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는 2071년에서 2100년 사이 태백산과 소백산 인근 내륙지역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이 아열대로 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일상에서 '고온다습한 아열대성 기후'를 경험하고 있다.
2009년 국내 판매 규모가 5만 대에 불과했던 제습기는 올해 100만대~140만대 가량 팔릴 것으로 예상됐다.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후인 일본에서는 가정 보급률이 90%대에 이르는 '아열대 기후 제품'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1999년 이후 우리나라는 강수일수는 줄고 강수량을 증가해 아열대성 지역 '스콜'처럼 와장창 비가 쏟아지는 형태를 보인다"며 "제주도와 남해 일부는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예측보다 빠른 아열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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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지구온난화'가 아열대화 원인? 기후 대재앙 오나
상당수 기후전문가들은 아열대화의 원인으로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지목한다. 산업화로 발생한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지구의 회복력을 유지하려면 산업혁명 이후 온난화를 2도 미만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00여년 동안 기온 증가분을 감안하면 0.65도 정도 밖에 여유가 없는 셈이다.
특히 아시아의 경우 기후변화가 양상이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는 폭염이 2주 넘게 지속되는 동시에 중국 쓰촨성에는 대홍수가 발생했다. 강수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이다.
반기성 센터장은 "지구 역사상 기후를 10만 년 전까지 복원을 해 본다고 해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이만큼 증가한 적이 없었다"며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외에는 기후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상태라면 2050년까지 3.7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평균기온이 천천히 변화한다고 해도 강수량의 진폭 등은 엄청난 크기여서 앞으로 예상치 못한 더 심한 폭염과 강수, 태풍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상청도 기온이 올라가면서 대기 불안정성이 심화돼 기후 변화를 예상하기 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한편에서는 대홍수가 나는데 다른 지역은 극심한 가뭄이 오는 등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기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는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예측 모델은 과장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용상 이화여대 기후환경변화예측연구센터 부소장은 "기후는 보통 10년 단위로 변동하는데 지난 100년 동안 평균 기온이 0.8도 정도 증가한 것을 두고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 부소장에 따르면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2000년동안 정체됐다. 이후 13년 동안의 기온 변화를 온실가스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이유다.
최 부소장은 "30년 전이나 반세기 전과 비교하면 지구가 확실히 더워진 게 사실"이라면서 "아열대화가 심해진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10년은 온대기후로 되돌아가는 형태를 보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예측 모델은 자연적인 변동성을 무시한다는 한계도 있다. 화산폭발이나 3~4년 주기로 번갈아 나타나는 엘니뇨와 라니냐의 진동, 미세먼지와 구름의 상호작용 등은 지구를 '시원하게'하는 현상이다.
최 부소장은 "온실가스 증가를 기반으로 한 예측 모델처럼 지구가 '선형적'으로 뜨거워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석탄과 석유를 대체할 재생에너지나 혁신적 기술을 기대해 볼 때도 기후 재앙이 당장 닥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