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F 유치]'불가능한건 아니다'서 시작..총력전 통해 유럽국가에 역전승
2011년 9월 스위스 제네바. 녹색기후기금 설계위원회(Transitional committee) 3차 회의가 열렸다. 2010년 12월 칸쿤 '16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6)'에서 설립키로 한 녹색기후기금(GCF)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선진국 15개국, 개발도상국 25개국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한국도 멤버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 회의에는 최광해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현재 장기전략국장)이 대표로 참석했다.
◇재정부 국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유치전
회의 도중 '이제부터는 사무국을 어디에 둘지를 생각하면서 회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사무국 유치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 국장은 그날 밤 '한국이 유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세계 환경관련 기구들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찾아봤다. 유럽과 북미에 집중돼 있고 아시아에는 한 곳도 없었다. 최 국장은 "아시아에도 환경 관련 국제기구를 두자는 명분으로 유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GCF 유치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담은 문건을 입수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최 국장은 최종구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신제윤 차관, 박재완 장관에게 차례로 보고했다. 재정부 장차관들은 곧바로 호응했다. 국제회의를 다수 참석해 왔던 박 장관, 신 차관, 최 차관보 모두 '한국에도 번듯한 국제기구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오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GCF는 앞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과 함께 3대 국제금융기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그동안 녹색성장을 표방해 왔던 한국에게 딱 들어맞았다.
범정부적인 준비 작업이 시작됐다. 2011년 12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리는 '17차 COP'에서 한국이 유치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공식 발표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적인 반대도 컸다. 한국은 직전에 'COP18' 유치를 추진하다 카타르에 고배를 마신 상황이었다. COP18 유치에 실패하고 곧바로 GCF 유치에 나서면 국제적으로 한국이 너무 탐욕스럽게 비춰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COP18 유치과정에서 한국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싱가포르가 GCF 유치에 의사가 있다는 점도 외교적으로 부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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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 17'을 앞두고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도 이 같은 논란이 벌어졌다. 하지만 박재완 장관은 "카타르는 월드컵에 이어 'COP18'도 유치했지만 어느 나라도 카타르를 두고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COP 유치도 못했는데 뭐가 탐욕스럽다는 것이냐"고 설득, GCF 유치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해서 유영숙 환경부 장관을 대표로 하는 COP17 대표단은 2012년 GCF 임시사무국 운영비 지원 계획까지 마련해 '더반'에 도착했다. 유 장관은 대표 연설을 통해 '한국의 유치 의사'를 공식 표명하고 2차 이사회와 GCF 포럼을 한국에서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유치 의지 표명에 필리핀, 캐나다, 미국, 일본 등이 크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등 예상치 못한 호응이 쏟아졌다. 필리핀은 "개도국도 스스로를 도울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고 캐나다는 "개도국의 적극적 역할을 보여준 정치적 리더십과 의지의 소산"이라고 평했다.
경쟁국들은 예상치 못했던 한국이 선수를 치고 나오자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멕시코가 곧바로 연설문을 수정해 자신들도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총력 유치전에 나서다
유치전에 뛰어들었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제기구 유치 경험이 풍부한 독일과 스위스가 많은 호응을 받고 있었고 한국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도의 평가였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며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GCF 유치 노력을 크게 홍보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필두로 범부처 차원의 총력 유치전을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4개 이사국을 대상으로 친서 발송과 전화 등을 통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지난 17일에는 직접 송도를 방문해 득표전을 펼치기도 했다. 국회도 GCF 유치 결의안을 채택해 임시사무국과 이사국에 통보했다.
기획재정부, 외교통상부, 환경부, 녹색성장위원회 장차관들은 이사국을 직접 방문해 지지를 요청했다. 신제윤 차관은 이름도 생소한 벨리즈, 바베이도스까지 날아갔고 최종구 차관보는 남아공, 이집트, 베닌, 잠비아 등 아프리카를 누볐다.
장차관들은 또 주요20개국(G20) 회의, 환경장관회의, 리오+20 정상회의, APEC 장관회의, 세계자연보전총회, IMF 연차총회 등 국제회의 때마다 이사국들과 양자면담을 통해 한국의 적극적 유치 의지를 설명하며 득표활동을 펼쳤다.
민간도 함께 움직였다. 한덕수 무역협회장을 위원장으로 학계, 언론, 기업, 국제인사, 민간단체 등이 참여한 GCF 민간유치위원회은 각각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치 활동을 지원했다. 유치 신청 도시인 인천은 송영길 시장이 앞장서 범 시민운동으로 GCF 유치를 위해 뛰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GCF 유치 성공은 전(全) 부처가 각자의 공(功)을 따지지 않고 협력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운도 따랐다..늦어진 GCF 이사국 선정, 한국에 득됐다
GCF 유치국 투표가 후보국인 한국에서 열리면서 한국은 홈 어드벤티지를 누릴 수 있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 등 GCF 이사국들에게 인천 송도가 독일의 본이나 스위스의 제네바 못지 않게 국제기구를 유치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 2차 이사회 개최를 신청했었다.
사실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는 치열한 유치 경쟁 때문에 유치국 투표가 열리지 않고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돼 왔었다. 일부 국가들이 유치 후보국인 한국에서 투표를 하는데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치국을 인준할 '18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8)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 결정해야 한다는데 이사회가 합의에 이르렀다. COP18은 오는 11월말 카타르에서 열릴 예정이다.
여기에는 운이 따랐다. 당초 한국에서 열리는 2차 이사회는 9월로 예정돼 있었다. 2차 이사회가 9월에 예정대로 열렸다면 'COP18'에 앞서 한 차례 더 이사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었다. 3차 이사회는 가장 강력한 후보국인 독일 본에서 열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차 이사회에 앞서 투표권을 가진 이사국 선정 절차가 지연됐다. 자연스럽게 한국 이사회가 10월로 미뤄졌고 이번에 유치국 선정 투표가 이뤄지게 됐다.
특히 한국은 이사회 직전인 지난 15일~18일 한-아프리카 장관급회의(KOAFEC)가 서울에서 열려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막판 유치전을 펼칠 수 있었던 점도 도움이 됐다는 후문이다.
GCF 유치전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한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독일'간 지역 대결 구도로 전개되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움직임이 유치 성공 여부에 중요한 변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KOAFEC 회의 기간 아프리카에 대해 총 6억 달러 수준의 종합적인 지원계획을 발표했고 콩고, 에티오피아, 잠비아, 남아공 등과 양자면담을 통해 지원을 호소했다.